잔치끝에 골목길엔 떡보따리 종종걸음 이젠 볼수없어젔다.

2006. 5. 1. 09:18250. 이야기

 

할머니께 드릴 잔치 음식 이다. 우리조상들은 이렇게 먹는것 하나라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솜씨를 한꼿 부려서 흥을 돋구며 살아가는 민족이었다. 문어다리 나 오징어 몸체 로  잔치때나 명절제사때는 이렇게 멋들어진 예술품을 만들며 밤새 물에불린 밤껍질도 치며 송편도 빚으며 친지들이모여 오손도손 예기에 밤새는줄 몰랐지 .

 

 

따로 확대 해보았다. 너무 멋진 예술 품이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오래도록 여흥을 남길수 있을까 ?

일단 할머니께서 잡수시도록 해야지 ,이가 없으시니 오래오래 입속에서 머므르며 오물오물 하시겠지.

 

 

 

 

어제는 아주 오랫만에 수원엘 나드리 갔다.

서울 큰처남댁 큰놈의 잔친데 아무리 보아도 수원으로 밖엔 짐작할 방도가 없다

그렇치 예식장소는 신부쪽맘대로이니까 ,그런데 딱히 수원이라는 글귀는 없고 여러가지 길안내를 봐서 수원에서 잔치를 치르는게 확실했다.그저께 진천에 잔치갔던 동서네 둘째아들이 밤을도와 다시 대구로 내려와 우리가족을 모셔간다고 밤늦게 전화와서 새벽에 부랴부랴 둘이 같이갔다.

다시 진천에 들려서 수원엘 가자니 아무리 젊은이라해도 피로할것이지만 내색은 전혀 않는다.

진천에서 큰 시내를 지나치며 그 유명한 농다리를 보여주어서 불현듯 생각났다.

저 다리는 한국의 12대 다리중 하나인기라. 사진에서 도 그랬트시 돌뚝다리 명소였다.

진천은 어디를 둘러봐도 야산조차 없었지만 그렇다고 훤히뚫린 평야도 아닌 특이한 지형으로

밋밋한 구릉지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목장도없고 밭을 일구지도 않는것 같다.새벽에 산책겸 나물뜯던 처형과 여러사람이 그런곳에서 너무멀리 나가는바람에 길을 잃어 혼이 났단다.

장장 5시간 이상 달린끝에 수원에 도착했는데 신부측 하객 들은 여수에서 관광버스로 벌써 도착해있었다.

신랑측 혼주들은 점심도 않고 화를 삮이고 잇었다. 식권한장에 2만4천원씩 이고 200여명의 손님을 치르면서도 혼주들도 식권없으면 먹을수없다니 !  결혼의 신풍속도가  열리는 순간이다.

전에는 거나하게 혼주상 한상차려 내놓고 신랑 신부 들러리랑 순례꾼들에도 주안상 따로 좌석 잡아주었는데 ,어찌타 이젠 혼주 조차 식권없으면 굶어야 한단 말인가 ?

 

아직은 우리세대가 끝나지 않았으니 혼주상 마주놓고 술한잔 돌리는 예절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냥 둘러보며 인사만하고 모두들 물러간다.

 

우리는 고모 들이라고 신혼살림집에를 갔다.가는도중에 수원성 장안문을 지나갔는데 20년 전에는 그렇게 말끔하게 단장되어있었는데 저렇게 거므스레 방치되다가는 곧 허물어지지않을까 싶다.

거기서도 운전 핑게로 술상은 아예 없고 폐백음식으로 서로 나누어먹고 한봉지씩 나누어 담고 이불하나씩 선물받아 밤늦게 집에 도착 했다.

 

신혼방 문창쌀에 침발라 문종이 에 구멍내고 첫날밤을 훔처 보겠다고 촛불끄기만 해봐라 너그 논에 다시는 모심어 주지않겟다고 으름짱 놓아가며 밤새 들여다보던 동네장난꾼들 아직도 눈에 선하고

신랑 발목을 실삼지로 동여매어 대들보에 묶어달아 신랑다룬다며 북어로 발바닥 두들겨 질드리는 동서네들 하며 어즈버 옛풍속이 모두 꿈만 같구나 !

 

이렇게 해서 똑보따리 주렁주렁 들고가든 옛 잔치풍습을 마음속으로만 그리며 피곤한 잠결속으로 빠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