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을 가산에 첫등정 안내를 하고

2006. 3. 7. 20:39250. 이야기

                                                                             2006-02-26

   요 몇달동안 집사람의 건강이 너무 나빠저서 우려가 됐지만 매일새벽 산격수도산 산책과 일요일이면 함지산  뜨지미 가람봉 등 가벼운 등산으로 차츰 차츰 단련했기에 다리힘은 안정되있고 또 가산은 사람이 워낙많기에 안심하고 나섰다.

 

아침 9시에 집을나서 팔달교를 거처 송림사를 내다보며 기성동으로 들어가  한티재 가기전 가산산성길로 접어들어 진남문에 10시 경 주차하고 등산로를 따라 너덜바위를 중심으로 왔다갔다 하는 꼬부랑길을 따라2시간걸려 동문과 중문을 거처 12시경 가산 바위에 도착했다. 도중에 푸석얼음낀 황토진흙길 이어서 우회로를 많이 이용 했다. 가산바위는 정상에 있는 80여평 규모의 퇴적암 으로 바위중앙의 샘을 중심으로 3동강 나있지만 거의 하나로 보기 쉽다.

 

옛날 어느 장군이 금강산에서 자갈을 가지고 다니다 한개 떨어뜨린것이 바로 가산바위가 됐으며

오줌줄기에 셈이 파젓다고하는 전설이다. 예전엔 그 장수의 손자국도 어렴풋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모되어 어디쯤인지 조차도 알수없다.

 

그옛날 어느 강바닥이 습곡현상으로 솟아올랐기 때문에 이렇게 정상에 퇴적암이 있는 것이다.

 

가산바위조각의 퇴적암  으로 수명이 얼마남지 않아 풍화가 심하다.

 

 

일주일 뒤에 본 도덕산 남쪽능선에서도 똑같은 퇴적암이 발견된점으로보아 도덕산과 가산이 같은강바닥이엇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그러나 가산에는 황토성분이 매우 많지만 도덕산에서는 황토길은 전혀 없었다.

 

중문 근처에는 조선시대 군사 진영터가 있어 집터도 많고 관찰사의 허름한 비석은 부셔진체 등산소로에서 발길에 밟히길래 한쪽으로 옮겨 놓았다. 이름을 단단히 외웠지만 집에오자 새까맣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O ...일것이다. 관찰사의 후손이 있다면 큼직한 비석으로 대체 해야 할것이다. 후손이 없다면 등산객 이라도 다시금 공덕비를 세워야 놓아야 할것이다. 주변에선 좋은석질이 보이지 않는다.허술한 화강암 뿐이다.

 

일기예보에는 오전중에는 비가오락가락 한다고 했는데 아침부터 매우 맑아 이젠 봄날씨로 내복입고는 등산 불가능 하다.

 

나혼자 올때는 기필코 너덜바위를 타고 올라야 겠다.

 

아침에 즉흥적으로 출발했기에 사과한알밖에 가진게 없었다.

 

서둘러 진남문으로 다시 내려와서 비상금 3000 원으로 오뎅 사먹고 나니 당했는 기분이다.

어찌 그것까지 싹슬이해서 쓰게 만드는지 집사람이 좀 얄밉다. 오뎅장사 아주머니의 아들도 항공대학 다닌다니 어쩌면 우리 장남과 만날지도 알수없는일이지만 학년이 많이 차이나고 입대도 해야 한다니 마주치긴 힘들겠다.

다음산행은 도덕산으로 정하고 ,정말로 한푼도 없는지 배가 많이 고프지만 겨우 허기만 떼우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