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구 ! 콩반찬 해 처먹었다고,그런 배락맞아 뒤질년이 다있나 ?

2005. 12. 10. 09:07250. 이야기

그랬다.

그시절 배고푸던 시절

너,나 없이 보리쌀알 한톨 없기는  매 한가지 였다.

동네부자쯤은 되야 아침엔 보리밥 이라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침부터 쑥죽 이다보니 애들입맛엔 영 아니지만

맹물끓여 보릿등겨 울겨먹는것조차도 귀했던 시절 이라

누구네 콩조림 냄새피우면 사방에서 입방아에 찧여저 쫓겨나기 마련 이었다.

그때는 어쩌다 운이 좋아 보리밥 한술 얻어오면 - 그것도 집안에 노모가 계셔야 그핑계로 얻을수 있었지만 - 그걸 솥에다 넣고 물을 한솥부어 푹 고아서 집안식구 빙 둘러앉아 무슨 보약탐하듯

멀건국물이라도 먹을수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울겨먹었었다.

그렇게 많은 물을 먹어선지 유난히 코흘리게가 많았다.

 

그래도 그땐 콩만은 약간 넉넉히 얻어먹을수 있어서 어쩌다 한번 콩 한사발 이라도 얻으면 그걸 쓸쩍 뽁아서 가루로 만들어 신주단지에 모셔놓고 아침 저녁으로 풀 뜯어 콩가루 한숫갈 넣고 죽을 쑤어온가족이 열흘은 먹을수있는 최고의 영양식이 었던만큼 그귀중한걸로 반찬만들어 먹는집이 있었다면 분명 이웃을 모르는 몰인정한 집으로 여겨 하늘이 천벌을 내려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 그시절엔 부자들도 아침엔 밥한술먹는다고 할정도 쯤 되면 으례 움막땅속엔 이웃을 위한 콩 몇가마니는 숨겨두고 보릿고개 허기진 이웃을 위해 밤중에 짓는개 입틀어막고 아무도 몰래 나누는 신앙심 같은 인정을 배풀줄 알았다. 들키기라도 하는날이면 몰수당하고도 만주 군량미 공출안바치고 숨긴죄로  언제나 긴칼 차고 다니는 일본순사에 묶여 지서에 끌려가 흠씬 두들겨맞아 뼈가 부셔저야 했단다.

죽음을 무릅쓴 이웃사랑  ! 

못다갚은 인정의 은혜 .

요즘 아이들 이런것좀 배우면 얼매나 좋겠노 !

 

그때는 나물조차도 구경할수 없어서 길가에는 풀한포기라도 나면 애들이 뜯어먹어버리고 산이나 들로 풀뜯으러 다녔다. 그래라도 그봄철을 무사히 넘겨야 무성한 여름에 나물구경 이랑 보리쌀도 구경 할수 있게 된다.

 

오죽 했으면 그때를 가리켜 보릿고개라 했겠는가 ?

보리가 필때까지만은 어떤 일이있어도 살아남아야 했다.

보리이삭이 나온다고 당장 먹을수 있는건 아니지만

보리이삭 마듸가 볼록하게 알이 통통 밸무렵이면 날씨가 따뜻해저 한꺼번에 오만 풀이랑 나물들이 솟아나 그제서야 굶어죽을 일은 없어지기 때문 이다.

보리이삭이 올라올때쯤 곰보병이라도 돌라치면 어김없이

동네아이들 앙상한 몰골들을 하나 남김없이 저승으로 몰아가거나 살아 남았어도 곰보가 되었단다.

 

천지 신명 이시여 우야뜻통 우리 얼라-들 올봄 냉기구로 무울꺼 좀 생기주이소 !

이 얼마나 절박했던 외침이랴  !

 

이렇게 먹을거리가 없다보니 만주로 이사가다 도중에도 굶어죽어야 했고

웬수같은 일본땅에 건너가서 살기도 했던일이 불과 100 년도 아닌 80 여년전의 우리네 들이었다.

 

옆집 어느 효자네는 제사때라도 쌀밥 한그릇 조상님깨 드릴려고 궁리끝에

정낭(시골집 화장실) 똥통속에 황토발라 쌀 한줌 숨겼더니

귀신같은 일본순사 칼차고 와서 공출 안바치고 숨겨놨다고 잡히가미

뉫놈이 찔러바칬쩨 냉죄 함보거라이 니 조상인들 닐 가만 안놔둘끼다 !   했드란다. 

 

나라잃은 삶의 뼈저린 설움 이었다.

 

개똥도 약에쓰려니 없다 는건 속담이 아니고

개똥조차도 배고픈 아이들이 영양식으로 주워 먹어버려서 길가에서 개똥구경조차 할수없었던 일상적인 일을두고 한말이다.

 

개똥이라도 보리밭에 파묻어 거름으로 쓰려니 없었다는 말이다.

사실은 그거라도 주워서 병약한 노모님 돌아가시기전에 한사발 끓여 드리고 싶었기에 구할수없음을    한탄했던 말이었다. 

 

소도 집안에만 묶어놓고 방목을 않았다 한다.

만약 소를 산이나 들에 놓아 기르면 풀을 전부 뜯어먹어 사람먹을게 없어지기 때문 이기도 했고

곧잘 잃어버렸기 때문 이라 했다.그러니 소똥은 특식에 해당 하지만 길가엔 없는것이고 말똥은 거칠어 먹을게 못되어 불소시게로 요긴히 썼단다 .

 

설마하니 개똥을 먹었다고 ?

의심하지 말지어다.

개는 들로산으로 거침없이 달리며 쥐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고 해서 그 똥속에는 풍부한 뼈조각이 녹아있어 아이들 뼈를 튼튼하게 자라게하는 유일한 보양식이었다.

 

아무렴 요즘아이들은 너무먹어 듸룩실룩거리며 걷는시절에 사는지라  

보릿고개 를 알턱이 없고

못먹어 배곪았단 말이라도 할라치면 (창자가 텅비어 내벽이 들어붙어 곪아터저 죽는병)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 한단다.

 

이런걸 두고 이해의 장벽이라 한단다.

이해를 못하는게 아니라 이해를 해줄수 없다 라는 사고방식으로

너 와 나 사이 에는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이나 다른 차원에 살고있음을 자랑스럽게 뻐기며 사는 세상 이란다.

 동정심 같은건 청계천 굴속에 내던진지 오래됐고

 남의사정같은건 생각해볼필요 없이 저만 잘살고

저만 맛있는거 먹고 저만 좋은옷 입으면 되고

이웃이 굶어죽어 보름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시체썩는냄새 풍길때까진 불편함 없이 잘들살고 있다.

 몰인정 이런말도 아마 모를거야.

분명히 사전 어느구석에 처박혀 찾는이 없어 쓸쓸히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보릿고개 시절엔 무슨 운동같은걸 벌이지 않았어도

주어쓰고 얻어쓰고 다시쓰고 고처쓰고 누가 가르처 주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터득 했었다.

조금 먹을게 생기니 풍부해저

벼룩시장을 찾는이도 있었다. 그래도 빈민촌 이란게 많았기 때문 이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남아돌때쯤 에는

아나바다 운동으로 주변을 일깨워 줬다. 낭비를 나무라는 지각있는 소리였다.

 

지금은 봉사와 질서를 강요해야 할때가 온것이다.

무조건 신형만 찾고 ,휴대폰 한달치 요금이 몇만원 으로는 어느나라가 아닌 우리네 점심 거르는 배고픈 아이들에겐 한달치 점심값이다.

 

과연 그정도 전화요금으로 그만큼 학습효과를 올리는가 ?

신문에 보니 공대생이 2 차 방정식도 풀지 못한다지 않는가 .

쓸때없는곳에 전화질 해대느라 수업중에 공부를 않고 게임만 하고 노닥거리는데 비용 지출하고   

 대학엔 친구들과 어울려 술마시고 컴게임배우려 가는곳이지 애차 공부하러 다니는건 아니란다.

 

그런 어른아기 일수록 개똥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 좀 더 지나면 정말로, 개똥을 정력제라 하면 꿈뻑 속아넘어가서

덥석 먹어버릴지도 모를 개똥같은 수준의 개똥같은 학생들이 나타날지 염려 스럽다.

 

그런 잡스런 다큰 아기 들은 모조리 학교강당에 몰아넣고 집신 삼는훈련이랑 망태울러매여 괭이

매고 산에보내 소나무 관솔케다 송진짜내어  지네들 자가용 연료라도 자급자족시키며 홀로 독립생활 하도록 교육 시키는게 차라리 도움되지 않을까 .

 

그리고 정신이 들때쯤 해서 사회의 기초소양인 봉사와 질서 밑 독립정신을 가르처야 할것 이다.

사회가 바로서려면 이렇게 기초소양 을 철저히 가르처야 한다.

그렇게 달구어 벼린뒤에야 개척정신을 심어주어야 할것이다.

 

그렇게 한다음에야 진정으로 학문 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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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그당시 성냥은 다황 이라고 해서 전부 자작해서 썼는데 왜인들 사과밭 변두리에 가면 농약으로 쓰고남은 찌꺼기 유황이 많이 버려저 있어 그걸 주워 녹여서 가느다란 버들가지에 찍어식혀 모아두고 한개씩 숯불에 갖다대면 파라스름한 불길이 금방 붙는다 하나 유황을 구하지 못한 곳에선 말똥을 숯불에 얹어 불면 쉽게 불꽃 인다함,소똥을 황토로 반죽하여 움막벽에 바르면 따뜻하고 ,따갈지지않고=균열,빈대생기지않아 토담집에 젤 좋다함,추운 결에 산에 나물뿌리 케러갈제 마른소똥에 불붙여 소쿠리에 담아놓고 불쬐는데 한개면 하루종일 버틴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