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도덕암에 어정수 한말 떠왔다.----( 9 )

2006. 5. 28. 13:20285. 자양구 타고 댕기믱

2006-05-24

설마 자전거 타고 그산 높은 도덕암엘 갔을라고 ,

그런데 나 대신 어떤 부부가 그길을 자전거로 뒤따라 오더니 그 까플막진 비탈길을 계속 오르고 있었다.적어도 30도 경사는 되리라 보였다. 아 이래서 자전거에도 수준계는 꼭 필요한거다.

누가 특허 좀 내주시오.자전거에 장착할 수준계 !

 

복현 5거리 --->유통단지입구 ---> 국우 터널---> 칠곡3 지구 --->국우동 까지 헛걸은--->지하도 지나 우회--->경상북도 농산물 원종장---> 칠곡 홈플러스 --->칠곡중학교--->나박딍 모릥이--->동명 우회전--->구덕못(팔거수리조합 못)--->수녀원--->팔공산 순환도로 기성동행 도중에 아주 작은팻말에 " 도덕암  " 가는길 안내간판  따라 개을건너 2 km  쯤 산길을 올라가면 된다.

 

나설때 국우동을 따라 도남동으로 가면 먼 산길은 빙 둘러가는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자전거타이어에 바람을 잔뜩 넣고 국우터널지나 칠곡3 지구로 우회전해서 국우동으로 들어갔다. 어떤 노인네로부터 전에는 산길로 동명으로넘어가는 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찻길이 잘 통해있어 그리 다니는 사람은 없고 그리 넘어간다해도 동명길과 마주치니 어짜피 빙 둘러가야 도덕사을 오를수 있단다. 도덕사는 도덕산 서쪽빈달에 있으므로 그길 아니면 산중에서더 험하게 빙빙둘러 다녀야 하는데 그런길이 지금껏 남아있겠느냐 있다해도 산중에서 길찾기는 어려우니 지금 빙빙 도는것이 훨신 쉽단다.

어른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암 들어야지 !  그런데 그치가 내보다는 나이가 적어보인다.비록 주름살은 많고 얼굴은 검지만 피부가 단단해보인다.예순 안쪽이다.

 

그런데 어쩌다 국우터널길을 놓치고 지하도로 나오게 되어 오른쪽으로 바짝 달렸다 .

그랬더니 경상북도 농산물 원종장이라는 건물이 나왔다.

옳치 저거다.

저기가면 토종채소 씨앗을 쉽게 구할수있겠거니,

 내일은 저길 가봐야지 하고 계속 달렸다.

샛길을 다 빠저나오니 칠곡 홈플러스가 넓은도로앞에 딱 버티고 서있었다.

계속 가니 칠곡성당 이요 칠곡 중학교 다. 내가 다니던 학교다. 칠곡바깥들이 너무나 많이 변해있어  고향지리도 이렇게 어둡어저 있다. 중학교 동기회 모임에도 한번밖엔 나가지 않았으니 그앞을 자전거로 지나려니 좀 부끄럽다. 읍내쪽에서 지날때는 일부러 곁눈질 주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지만 국우동쪽에서 나오니 곧바로 마주치는거나 다름없어 한번더 처다보게 되니 마음한구석이 자꾸 찌려 오지만 그래도 모른척 하며 똑똑히 보았다.물론 현재건물은 위치나 규모가 많이 달라젔지만 대문이 건물밑으로 통하는 구조였다. 천년묶엇다는 은행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됐을까 ?내가 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너무커서 두 덩치는 잘라저 밑둥만남아있고 하나만 두 아름들이굵기 였는데.

 

아시동 지나서 나박딍이 모릥이에 아들낳는다는 왼팔매질 구멍을 자세히 확인할수없어 그냥 지나고 동명에서 우회전해 서 팔거못을 지나 큰길로 얼마쯤 가다가 길을 물어 잠시후 아주 작은팻말에 도덕암 2 km 란걸 보고 샛길로 개울건너니 곧바로 언덕길이 시작 됐다. 콘크리트 포장이 잘돼있으나 어찌나 가파른지 뒤돌아보니 자전거로 내려올수있을까 염려 돼어 평지를 만나면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리라 마음 먹었다. 길이 좀 느구러저 계속 밀고 올라갔다.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 산악자전거를 탄 부부가 앞질러 지나간다.

갑자기 급한 경사길을 만나며 바로 위에서 우렁찬 개짓는 소리가 났다. 개는 자전거에는 잘 덤비지 않는것을 알기 때문에 겁은 나지 않았다.

앞질러가던 자전거 팀에서 여자만 잠시후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오르고 남자는 벌써 어디론가 먼저 가버린 모양이다. 남자가 절에 도착하자 개개 짖었던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경내에서 자전거를 몰면 안된다는 생각에 마지막 경사지 밑에다. 세워놓고 물통만 두개 가지고 올라갔다.

자전거 팀은 아침에는 대구 앞산통신대를 올랐단다.앞기어는 3단 인데 뒷기어는 내것보다 2단 많은 9 단 기어 이다.앞바퀴에는 회전수 메타가 달려있어  달린거리가 나타났다.

남자는 여기까지 자전거를 밟아 올랐단다. 철강같은 사나희 다.

 

고려 광종 임금의 속병을 낫게했던 어정수 란 글귀를 재확인 하고

절 뒤뜰로 돌아 들어가니 시멘트 바닥이 다 깨어저 물기가 있어 지난번에 왔을때 못느끼던 너절부런 광경이다. 어정수 물구멍과 뒤뜰을 단단히 재 포장 하고 정리해놓아야 할것이다 .

물바가지가 너무 작아 몇번떠내야 반말통에 채울수 있을까 하여 헤아려 보니 13 번 만에 그득했다.

씀바뀌 꽃술 같은게 물위에 노랗게 많이 떠있다.

 불순물이 간혹 보이고 비가 온탓인지 다소 흐려 보이긴 하지만 두통 그득히 담았다. 적어도천년묵은 약수가 아니던가 .

이 약수는 마신뒤에 단맛을 약간 느낄수있는 물이다.

물길러가는 고마음에 5 백원 동전 넣고나니  큰개가 나타나서 혼비백산 했지만 마치 사람처럼 물꾸러미 처다 보더니 그냥 뒤돌아 나가버린다.

 

물한말을 가지고 내려오려니 보통일이 아니다. 만약 자전거를 중간에 세워두었더라면 큰일날뻔했다. 두번 왕복햐야 했으리라.오동나무같은 기둥에 손바닥만큼한 넓은잎을단 나뭇가지가 여럿 잘려저 있어 물어보니 보리수 나무란다. 영천 만불사의 온실안에있는 보리수는 땅바닥에서 잔가지를 많이치는 형태이고 잎 꼬리가 매우길게 뻗는특이하고 찬란한 보리수 였는데 많이 다르다.

 

물통을 자전거에 싣고 급한 내리막을 걸으려니 패달이 자꾸 오른쪽 장단지에 부딯처 걸을수 없었다. 멀리하려니 물통무게로 넘어지려하고 멀리서 브레이크 잡기도 몹씨 위험해서 한동안 망서렸다.특히 꼬부랑길에서는 위험천만했다. 한통씩 나를까 하는동안에 심한 경사는 지났다.

차라리 올라타서 발로 걸으면 어떨까 하는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자전거 발명초기에는 발로 굴리며 달렸다는 글과 사진을 본적이 잇기 때문 이다.

다행히 나는 키가 커서 자전거에 올라탄체로 쉽게 땅을 밟을수 있었다.

그래도 안전상 안장을 풀어서 최저한도까지 높이를 낮추었다.

발을 마음되로 걸을수 있게 높이가 조절돼자 브레이크를 양쪽다 꽉 잡고 내려오니 한결 쉽지만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안장자루가 쿳션한계이하로 내려갔기때문에 약간의 충격에도 타달딱 거리는 부딫히는 충격이 엉덩이를 때리지만 안전상 어쩔 도리가 없는것이다.

옛날에 속리산 법주사 꼬부랑 길을 내려오면서 자전거 브렐이크를 계속잡고 있다가 브레이크를 태운적이 있어서 좌우 교대로 브레이크를 걸거나 신발로 보조역할을 하거나 하여 브레이크 과열을 막았다.

잠시후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아무리 물통을 꽉 매어도 내리막길에 시멘트바닥에 깊게 파놓은 홈의 충격진동이 극심하여 물통이 자꾸 밑으로 쏠려 궁뎅이를 안장에서 밀치고 허리를 압박해 온다.

근근히 부도탑있는데까지 내려와서 세우려니 이것또한 보통문제가 아니다. 경사가 심해 서있으려 하지 않는것이다. 할수없어 마지막 수단으로 도랑 흙쪽으로 몰아세워 발로 땅을 북돋유고 나서 자갈을 깔고 받침대를 시멘트바닥에 대고 자전거를 위로 향하게해서 겨우 세울수 있었다.

힘을 얼마나 썼는지 땀이 비오듯 한다. 점심김밥을 먹고 나니 비로서 어깨가 아파 왔다.

일단 아픔이 나타나자 손목도 씨려오기 시작 한다.물통과 온몸이 아래로 쏠리고 엉뎅이가 흘러내림을 방지하자니 순전히 팔힘으로만 버텼기 때문이다.허리로 물통을 뒤로 계속밀치는데 힘을 썼다보니 허리도 저려 온다.

이제는 짧게 경사지를 하나씩만 통과하며 자전거위에 서서 자주쉬며 내려 왔다.숲 사이로 멀리 팔거수리못이 보이는가 했더니 마지막 급경사를 끝으로 탄력을 주어 도랑을 건너 도로까지 무사히 나와서는 자전거를 세우고 마음껏 도로위에 퍼들게 앉아서 푹 쉬었다.잠이 살짝 드려길래 물한병 다 마시고 고무줄로 짐을  다시 매고나서 이제는 마음껏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몰통을 내리고 다시 안장높이를 조절하려고 앉아보니 짐이 없어지며 저절로 높이가 알맞은것 같아 그냥 두었다.물병에 담아온 보리수나무 가지를 땅에 꺽꽂이 했다.

 

이물 마시고 할머니 병환과 집사람 건강해지기만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