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고려때의 유명한 약수 어정수 가 대구 도덕산 도덕암에 있다.

2005. 6. 8. 22:02285. 자양구 타고 댕기믱

 
1차  도덕산 산행길 탐색 작전
        2005 - 06 -08
 
 

도덕산은 잘알고 있는산 이었지만 일반적인 등산로 와는 동떨어저 있어 가기가 쉽잖았다.
대구북구 에서 칠곡 국우동을 거처 도남동 골짜기를 깊이들어가야하는 엄청난 먼거리에도 산은 별로높지 않은 660 m 에 불과한데 이또한 독립된탓에 다른산으로 연결된고리가없어 등산부적합하다.
자전거로 연경을 자주 드나들면서 연경버스정류장 옆도랑에서 곰보흑돌이 많이 눈에 띄어 관심이 생겨 저절로 곰보돌도랑 으로 각인 됐다.어느날은 쟁반돌을 찾다가 곰보돌도랑에서쟁반돌을 많이 발견했다.꽃심을화분으로 좋은것이다.갈색내화석으로 가스렌지용 수집했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보니 곰보돌도랑이 분명히 도덕산 중턱까지 연결되있다.
게다가 연경못까지 큰게 있으니 낛시꾼도 많을것이라 여겨젔다.
어느날인가 민들레는 뜯지 못하고 연경절벽 넘어에서 암벽등반을 한참 구경하다 익모초만 조금 뜯고 자갈밭에서 맨발로 지압을마치도 나오는데 사각그물 어틀로 고기잡던 사람들이 철수하며 버리는 물고기가 베를 따인체로 살아있는데 보니 모두 중태기였다.중태기는 배를 따도 5분정도는 살아있었다.
돌돔비슷한것과 중태기를 얻은후 시간이 너무일어서 다시 곰보돌도랑을 찾았는데 포크레인으로
도랑을 파헤치고 한창공사중이라 자전거로 그냥 그길을 계속 올라가 보았다.
도중 길가에 민방위급수대의 물을 생수통에 많이 길어가는것을 보고 물맛을 보니 잡냄새는
없었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길가에뽕나무열매가 뿕은빛을띈다. 그리고 새모래덩굴이 아주 흔한것이 신기했다. 미나리도 더러있다.
계속 올라가자 높다란둑이 서있는 연경 못이었다.깊은골짜기에선 결혼드레스입고 촬영이
 한창 이었다. 어떤낛시꾼 옆에서 구경 했는데 이 연못에는 베스가 많단다.내가 연경절벽
넘어에서 얻은것을 보여줬더니 옆구리 의 파란 세로줄 무늬가 독특한 불루길 이란다.
모형고기 를 물속에서 실을 당겨 자세히 보여주는데 정말로 모형고기가 꼬불거리며 살아있
는듯 헤엄치며 실에 끌려간다.1 시간 지나도록 베스가 노니는건 보아도 잡히지는 않았다.


2005년 6월 7일 10:30 오늘은 연경못넘어 마을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하고 나섰다.
모내기는 끝났고 논매기도 하고 빈자리 가식도 하고 있었다.이앙기를 잘못구입해서 벼포기
가 많이 빠저버리고 어린모는 비들기가 뽑아먹어버렸기 때문에 가식한단다.
동네끝에 난 물도랑에서 많은 비단개구리를 발견 했다. 담약으로 구어먹는종류였다.물도랑이 길가에 나있고 작은파이프 를 받치는 돌틈새에 끼어들어 잡을 자릿수가 부족하여 내쫒기는 무리들이 길건너가다 차에 치어 죽은게 많았다.
연경못에는 여전히 낛시꾼 몇명이 지키고 있었다. 오후 2시 넘어야 잡힌단다.
못을지나 계속 자전거로 올라가니 개짓는소리 요란하지만 개는 자전거 에는 덤비지 않는 약점을알았다. 오리집간판있고 바로 거기에 또다시 작은연못이 있었다. 큰나무밑에 잠시 쉬고 자전거를 거기 두고 못옆으로난길을 따라 개울로 들어갔다.감나무밭 애추밭 사이로 난 도랑에서 많은 곰보흑돌을 볼수있었다. 여기에서는 큰것이 유난히 많다.수석꾼들이 돌을 씻어보고 건저내놓고 한 흔적이 역력했다.

개울물에는 수많은 오글챙이들이 뽕열매를 몰고 다니며 열심히 빨아먹고 있다. 모두 검은색 이었다.문득 비단개구리 올챙이는 무슨 색일지 궁금 했다. 도랑가에는 장미잎딸기가 많아서 1리터 가까히 따다 성한것은 할머니 드리고 나머지는 솔순발효액에 넣었는데 자전거 진동에 모두 망가젔기 때문이다.
등산객은 없었고 몇명 만났으나 모두 산나물뜯으러 다닌단다.큰비닐봉지로 하나가득씩 뜯어
 내려오고 있었다.오리수백마리가 우는 소리 듣고 저녁모이 주는소리로 착각하고 도랑을 내려 와버렸다 그러나 아직 해가 높이 있었다. 오는길에 비단개구리몇마리 잡아서 화단의목단나무그늘에 땅을 파고 물통을 묻고 물을 담은후 화단에 개구리를 놓아주었다.쥐며느리 보고 잡을자세를 취했다.비단개구리는 날렵하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성질도 없고 주로 엉금엄금 기어다니는 아주 온순 한것임을 알았다.2005년 6월 8일 아침에 보니 비단개구리가 스스로 물통에 들어가서 짝짓기 중이다.두마리는 동쪽으로 열심히 기어나가지만 그쪽은 풀숲이 없는곳인데 이상 했다

 올여름 모기는 비단개구리가 다 잡아먹고 쥐며느리도 박멸하길 바랄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뛰어 오르는것을 볼수없으니 쥐며느리는 몰라도 모기는 어려울것같다.
 ==========비단개구리 울음소리는 낮고 작은 맑은소리로 자주 운다.

으웅 으웅 갸르르릉 하는 아주 부드러운 울음소리다.실내에서 키워도 좋을만 하다.===========

물통에서 나와 기어다니는 개미는 잡아 삼키고는 머리를 숙여 앞발로 쓰다듬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파리는 워낙 날샌지라 잡질 못한다.물통속을 자주 들락 거린다.나오기 쉽게 넓직한돌을 가로질러 놓고  중태기도 한마리 넣어 놓았다.잡아내서 사진도 찍어 놓았다.

사진 찍을동안에도 유리창 수직벽을 청개구리 처럼 잘기어오르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금방떨어진다.

비단개구리를 대량번식시켜 애완동물로 기르면 조용한 밤에 우는소리가 일품 일것 같다.

인공먹이의 연구가 필요 하다. 만지면 등에서 유독한 분비물이 나오므로 오래만지지 말아야 한다.

옴개구리,무당개구리 비단개구리 등 구별 힘들고 무당개구리=비단개구리 라고 알려저 있다.

옴개구리는 올챙이가 물속에서 겨울을나고 이듬해에 개구리로 변태한다는것만 확실한 차이가 있다.

 

그 후에도 두번 더 갔으나 사람이 다닌 발자취는 거의 없고 도랑따라 수석 채집흔적만 몇군데 보일뿐 옛날엔 호랑이도 잇엇다고 주의받은 곳이라 더오른 용기는 나지 않았다.

 

 

 

===================2차 2006 - 03 - 05  드디어 혼자 정상 에 올랐다.========================

 

어제  마느레쟁이가 혼자먼저 도덕산엘 한번다녀와서 쉬운길을 익히고 오라는 의견을 냈으므로

마음껏 돌아다녀 볼 요량으로 도시락 대신 간단히 볶은콩 한병과 작은물병 두개만 휴대하고 삽추켈 주머니와 쇠꼬챙이만 들고 8시경 큰길건너에서 북구-2 버스를 타고 10시경 연경에서 내렸다.

축축하게 물기에 젖은체로 콩를 볶는 중인것과 완전히 볶은후의 모습

 

나물꾼 들의 냉이 뜯기도 거절하고 처음들어보는 코딱때기 나물 한포기를 얻어 컵에담아 그늘에 두엇다.

 

 

생수터에서 수돗물을 생수로 바꾸어 담고 연경못을 지나고

오리농장옆 더작은못도 지나 도랑길을 계속 따라 갔다. 도랑에선 구멍이 숭숭뚫린 돌이나 부식이 심한 돌 들이 더러 있었다.썩은 나무둥치가 경주에밀레종의 비천상의 비천형상을 너무 빼닮은 것을 하나 주어 바위위에 걸처놓았다.

---------(다음산행시 찾아서 사진 올릴 것임)--------

길도 좁지만 사람을 만날수없었으나

예전부터 도덕산 하면 항상따라다니던 기억인 엄청나게 큰 십자가를 찾아볼 생각으로 무조건 오른쪽 능선으로 길을 접어들었다.

진흙길에서 어지럽게 널려진 짐승발자국을 많이 발견 했다.그러나 사람의 발자국이 맨 위에 찍혀잇엇기 때문에 사냥꾼이 지나간것으로 안심하고 계속 길을 걸었다.

작은 말굽형 두조가리 발톱은 노루 발자국이었으나 그보다 훨씬 큰 발자국은 사냥개일것으로 추측하면서도 발톱자국이 잘 보이지 않아 혹시 표범일까하고 겁도났지만 어디를 보아도 사람발자국이 꼭 맨위에 찍혀있었기에 사냥개 데리고 사냥 나선것으로 짐작됐다.

500 m 이상을 그렇게 노루발자국이 널려있었다.

그와함께 굵은 마사토를 뿌린듯한 심한부식이 된돌들을 아주 흔하게 볼수있었다.

마침 비슷한개 있어서 사진을 올려보지만 이건 마사토로 침식당한것 같은 인상이다.

 

노루발자국을 잘 떠서 건조되도록 나무위에 올려놓았다

-------(다음 산행시 사진 올릴것임)--------

골마루 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도저히 사냥꾼 차림새는 아니었다.사냥개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의 나무들이 전부 두충나무인 걸로보아 두충나무 가지를 치러 온모양이다.

길을 물어 좌측으로 능선을 잡고 길을 걸었다.

참나물 이 가끔 있을뿐 별다른 약초도 없었고 노간주나무만은 흔해서 시야에서 끊이질 않는다.

 

참나물 뿌리

 

노간주 씨앗

 

시간을 절약키 위해 볶은콩과 물을 먹으며 쉬지않고 강행군 했다.

육군 표지판 의 내용인즉 6.25 동란 격전지여서 아직도 불발탄이 남아 있으므로 등산로 외에는 들어가지 말라 는 경고가 있었다.

정상부근까지 왔는데도 아무데도 그렇게 크게 보이던 십자가 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다만 구덩이가 크게 2 군데 있었지만 보초근무용 참호 형태는 아니었다.발굴흔적으로 짐작된다.

한평생 눈에 아른거리든 그 큰 십자가를 지워야 할땐가 보다.

-----(차후 연필로 끄적여 올릴 것임)-------

정상 헬기장에 도착할때까지 산행꾼을 만날수없었다. 정상을 지나가봤지만 그길은 가산의 남창길로 뻗은것 같아서 뒤돌아 오르며 산행시 자주보는 푸른색의 나뭇가지를 채집했다. 껍질까지 온전히 남아있어 무슨나무인지 알아낼수도 있을것이다.

 

대체 무슨나무 이고 왜 푸른색을 띌까 ? 항상 궁금했던 것이다.(사진보다 더욱 파란색임)

 

다시 정상에서 콩을 먹으며 쉬는데 비로써 아이 2명과 몇명을 만났다.아이들에게 콩을 나누어 주며 옛날선비들의 과거길에서 밥대신 먹으며 다닌 예기를 해주었다.시간을 물으니 12시 직전 이다.

도덕암 길로 올라왔단다.벼란간 도덕암을 가고싶어 길을 물어 내려가다가 들은대로 오른쪽길로 따라갔다. 한참가다가 또 갈림길에서 방금그은 화살표를 보았으나 어느길인지 알수없는데 마침 젊은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

자기들은 함지산쪽에서 오는길인데 도덕암은 없었다고 하면서 화살표그어진쪽일거라 해서

그리로 내려가는데 이번엔 모든 돌들이 판이하게 달랐다.가산바위와 같은 퇴적암 뿐이다.

도중에 누군가 근사한 솜씨로 마치 석가탑 닮은 키보다낮은 아담한 돌탑을 퇴적암 몇개로 쌓아놓았다. 이정도면 충분히 예술성 있다 하겠다.

-----(디지탈 사진기 생길때까지 보류)-----

부러진 검으스레한 나뭇가지 껍질을 만저보았는데 닥 껍질 같아 당겨보니 아주 질기지만 닥껍질은 아니었다.섬유로써의 가치는 되겠다.

 

섬유로 이용 가능한 나무 껍질

 

너무 예쁜 버섯들이 나무에 퍼어서 가지체로 가방에 담아왔으나 다 부셔저 버렸다.

부셔젔어도 예쁜버섯 이 꽃이 핀듯 했다.

 

눈 쌓인듯한 버섯도 조각조각 나버렸다.

 

수백만년 된듯이 보였던 원인닮았던 상수리 껍질 부셔진건 너무 안타까웠다.

두개골 닮았던 나무껍질 이었는데 망거젔어도 약간은 닮았보인다.

 

 

노루발풀 도 흔하게 보였다.

 

노루발풀 씨앗 꼬투리

 

또 삼거리를 만났으나 이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곳을향해 오른쪼길로 내려갔다.절이 보였다.수리하면서 나온 목재들을 전부 작달막하게 잘라서 장작개비처럼 샇아놓았다 너무무식하게 처리해 놓았다.단청도 고티가 나고 수백년 됨즉한 고건축 목재였는데 ....

 

생각보다 상당히 큰 동종이 있었다.국민학교때 소풍 온곳이긴 해도 저 동종은 기억에도 없다. 높이가 1 m 30 cm 는 넘어 보알것 같다. 내력을 읽어 보는데

 

현존하는 고려때의 유명한 약수인 ======어정수===== 라고 쓰여 있었다.

깜짝놀라 차근차근 희미한 신문글씨를 읽어 보았다.

고려 광종임금이 칠성암(현 도덕암)의 혜정거사를 왕의 스승인 왕사로 삼으려고

여러번 신하를 내려 보냈으나 번번히 거절 당하자

광종임금이 몸소 찾아왔지만 역시 거절 당했다.

섭섭한 마음에 돌아가려 하자

기왕 오신김에 병이나 치료하고 가시라는 혜정거사의 아룀에 3일간 묶게 되었는데

괴롭혀오던 속병을 완전히 낮게 되자.그때 마셨던 약수를 ---어정수---라 부르게 되고 고려때는 아주 유명한 약수로 이름을 날렷다 한다.그때부터 왕실에서 칠성사에 많은 제정 지원을 받아 지금껏 지탱해온 도덕 암이다.

얼릉 약수있는곳을 물으니 극락암 ? 바로뒤쪽 담벼락 아래에 뜰 보다 낮은 깊숙한곳에 겨우 보였다.당장 병속의 물을 솓아 버리고 어정수로 바꿔 담았다.

촛불그슬음이 떠다니지만 300 cc작은병 2개 에 ---어정수---를 병이 터지도록 꾹꾹 눌러 담았다.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칠곡군 동명면 이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 500 m 위의 젊은 부부가 오던 함지산행코스를 향해 올라가며 생각 했다.

이 약수로 누워만 계시는 어머님께서 드시면 혹시 일어나실까 ? 하고 불현듯 96세이신 어머님병환을 생각 했다.또다른 생각도 연이어 떠올랐다. 아냐 ,어정수는 속병을 났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속병이 심한 마느레쟁이가 먹으면 좋을 꺼야. 그럼 두병이니 한병식 나눌까 ?

아냐, 병이 너무 작아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아냐, 다음에 마느레 쟁이와 같이와서 큰통에 받아와야지.그것도 아냐, 마느레쟁이가 올라오기엔 길이 너무험해 나혼자 둥근물통에 가득담아서 동명쪽으로 굴려내리면 쉬울거야.아-아, 몰라 몰라 마느레쟁이가 속병이 급하니 먼저 맥여야지.

어정수 600 cc 가 이렇듯 심란 해진다.

함지산 행쪽으로 내려오면서 두더지가 땅을 수없이 파헤친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부터 찾던 삽추가 눈에 띄기 시작 해서 부지런히 캐모았다.

 

삽추 뿌리  ,위장약으로 쓰이며 솔순과 청가시덩굴뿌리와 같이 소주로 약용주를 담그면 허리 위장 아픈데 좋으며 한약특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라 술을 마실줄 몰라도 맛있게 먹을수 있다.

 

 

도남못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는데 이번엔 더 큰못이 보인다. 서리못인가 ? 아직도 안미어젔는가 ?

좌측길로 접어들며 문득 위를보니 대단히 높은산이 보인다.무슨 산일까  ?

잠시후 그산자락에 산불 자취를 보고서야 아까보던 산임을 께닿고 연경골에 다달았음을 알았다. 안심하고 콩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물은 마을앞 생수터에서 마시기로 마음먹었다.

무조건 왼쪽하산길을 찾아 오랫동안 내려오자 갑자기 연경못 유입구 근처 길보다 낮은 묘지 있는 공터로 나왔다.연경못을 지나 내려오다 보니 아낙네들이 배추밭에 떼지어 있길래 가보니

나물은 뒷전이고 수확을 포기한 배추밭에서 얼어붙은배추이삭줐기에 바쁘다.

몇달 지은 배추농사 어찌하야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고 온 밭때기 다 얼리며 가슴 쓰렸을꼬 ?

일손이 부족하여 움파고 묻을 시간조차 없었으리.

 

 

몇포기 따보니 밑둥은 얼어서 썩어 들어가지만 잘라내면 먹을만 해서 주머니에 담은게 너무 과중해서 버섯들이 손상되는 원인이었다.마을앞 생수터 에서 양해를 받고 먼저 물을 얻어 마신후 논바닥에서 냉이뜯는부부에게로 가보니 아까 산에서 만난 젊은부부 들이었다.

반가워서 그들을 따라 버스타기를 포기하고 다시 가남봉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부자가 다 군인 이란다. 아비는 직업 군인이거 아들은 대학등록금 마련위해 단기하사란다.대구에 온지 십여년 돼서 함지산이랑 가람봉을 매일처럼 오르며 체력을 기르고 주말엔 밤에 차를몰아 원거리를 가서 새벽에 도착하면 관리자들이 근무하기전 새벽이라 주차도 무료로하고 입장료도 무료란다.그돈으로 점심이랑 저녁도 충분히 사먹는 알뜰 부부 들이다.워낙 강원도 출신이라 산나물에도 밝아 팔공산 개골을 오르내리며 매일처럼 나물도 뜯는단다.외동아들은 군대에서도 컴퓨터 수리 전문가로 통하여 불려다니느라 일요일도없고 밤낮도 없단다.작년 가을엔 이 산비얄에서 꿀밤이 얼마나 풍년 들었던지 매일 매일 산에올라 한보따리씩 꿀밤을 주어다 가루를 만들어 냉장고에도 넣어두고 친정집 태백에도 보냈단다.알뜰살뜰가정 이라 별명해야겠다. 동변동으로 내려와 헤어젔는데 기왕 내친김에 집에까지 삼통 걸어와 버렸다.저녁 7시가 지났다.비지땀이 심하게 나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2틀이나 집나갔던 강아지 재롱이가 돌아왔다며 기진맥진한 남의속도 모르고 자꾸만  재롱이를 보고 오랜다 .반갑기도 해서 잠간보고 쓰다듬어준후 저녁상을 받았다.

점심을 거른지라 밥을 두그릇이나 먹고 국도 두그릇 먹고 물도 3컵마셨더니 배가 약간 아파온다.

그래도 워낙 산에서 물을 마시자 않은지라 이튿날아침에도 오줌눌게 없었다. 

기진맥진한 이유는 물을 마시지않은 탈수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먼거리는 아니었으니까 .

 

 

=======3차는 마느레쟁이와 같이가는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