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자전거로 대구서 영천 시장에 갔다.---------( 5 )

2006. 5. 19. 15:12267. 영천장

드디어 일대 모험을 강행 하기로 결심하고 집사람 한테도 일렀다.
내일 영천장날이라 자전거로 간다고하니 물론 말렸다.
큰물병에 수돗물을 가득체워 냉동시켜 꽁꽁 얼리고 작은물병 두개를 냉장실에
 식혀놓고 아이스팩 3개도 냉동실에서 꽁꽁얼렸다.
자전거 안장이 뜨거워지면 식혀주기 위한 것이다.
일기예보에 마침 영천이 구름낀 날씨여서 안성마춤이었다.
배낭에 수첩과 볼팬 자전거 응급조치할 플라이어 체인들어올릴 칼 도 넣고
배가 너무부르면 자전거를 탈수없기에 양갱3개와 찹쌀떡 2개 만 점심으로
넣어두고 시계를 새벽 5시로 맞추어 놓고 짧은티를 미리 입고 잠들었다.
옷이 몸에 숨이잡혀야 불편하지 않기 때문 이다.
외삼촌은 새벽 2~ 3시면 칠곡 대천에서 걸어가서 물건을 구했다지만
나는 대구서 출발하고 더구나 잘포장된 직선화 된 도로위를 자전거로 달리니
겁날게 무어있나.날이 어두워 진다해도 늑대도 없을태고 물론 찻길에 강도 도 없으며
차 들이 많이 달리니 도로또한 밝을터이고 아무때나 급하면 자전거를 버리고 아무
 차 나 세워 타고 대구로 오면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한번 미루게되면 다시 5일간 기회가 미뤄 진다.

2006-05-17  새벽에 일어나서 칡으로 꼬아만든 닭발몇개만 영양식으로 먹다 남은건
재롱이를 주었다. 집사람이 신분증 휴대를 당부하며 1 만원을 비상금으로 끼워넣어주며
급할때는 자전거를 버리고 차를 타라고 일러주며 전화카드 까지 확인 한다.
그 전화카드는 주교님 께서 물려주신건데 별로 쓰지도 않았다.
 20년만에 화분에서 땅에 옮겨심은 산부추를 강아지가 건드리지 못하게 삽과 괭이
물통등으로 단단히 가로막아 다시한번 얽어매놓고 집 잘지키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영천을 향해 자전거를 몰았다.

복현 5 거리--->대구공항--->율하 역--->반야월 3 거리--->경산,청도 분기점--->청천 역

--->경동 정보대학--->효성 카톨릭 대학--->하양 역--->금호 읍--->완산 5거리--->영천 역

 

끼지 약 42 km 를 4시간 반 만에 자전거로 주파 했으니 마라톤 선수보다 2배 이상 느림보 였다.

 

 느린 이유중에 하나는

금호 에서 일반국도 4호선이 무런 표지도 없이 자동차 전용도로 로 이어지며 한참 진입후에야 자동차 전용도로란 이정표가 나오며 자전거 출입금지표가 있어서 도로 돌아나올 기회가 오래 걸렸고 거기서 빠저 나와도 어디가 어딘지 이정표가 전혀 없었다. 후진국 의 작태가 분명했다. 무작정 큰길쪽으로 달리다가 사람을 만나 길을 물으니 엉뚱한 곳이어서 또 도로 돌아나와 금호 읍으로 향하니 이번엔 도로공사중이라 통행 제한을 하고 있느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으니 자기도 구미에서 길 안내하러 왔기 때문에 여기 지리를 모른단다.이러니 또 기가 막히고 또 한번 후진국 작태 를 보았다. 도대체 이나라는 기본이 없는 나라야 . 새마을 교육이 없어지니 온통 헌나라 일색 이야.자기만 알고 살면되지 남이사 둘러다니건 헛걸음치던 무슨 하관이야 ,길도모르고 다니는놈은 모조리 땅속에 상관 시켜야 하는건가 ? 한참 서성대며 포크레인을 피하고 금호읍의 도로도 엉망이고 해서 자전거를 내려서 걸었다. 그러던중에 최신예 포도밭을 발견하고는 멈춰서서 감탄하며 구경하다가 아예 수첩에다 스케취를 하였다.

 

 

포도밭 을 대강 설명하면 ,포도나무의 키를 1 m 이상 유난히 크게 키워 서서도 충분히 작업할수있게했고 가지를 양쪽으로 벌린다음에도 다시 V자 계곡 으로 다시 가지를 벌려 마치 두줄 심은듯이 태양빛을 많이 받게햇고 식제거리도 넓게 2.5 m  정도로 멀리 심었고 비가리게 비닐을 마치 우산처럼 길게 돔을 지었는데 양끝과 천정에도 20 m/m 전선관을 사용하고 매 식제 거리마다 전선관으로 가로로 전체 이랑을 연결하여 비바람과 태풍에도 견딜수있게 튼튼히 얽어맸고 가지 묶을 철사도 3단으로 하여 그중 두단은 가지 벌림을 위해 양쪽으로 처 두는등 노지재배의 장점과 비가림을 철저히 하고 서서 일하는데 편리하도록 최선을 다해둔 점이다. 무슨 주유소 옆 이었다.

 

그외에도 포도밭을 온상재배하는 하우스도 많았다.

 

영천시장 큰거리에는 길거리에 과자를 무데기로 쌓아놓고 홉되로 파는 전형적인 옛 시장 풍경 이다.그 옆좁은길로 가보니 우선 코끝에 진하게 풍겨오는 상어돔배기가 허옇게 서리를 덮어쓰고 김이 모락모락 퍼지고 있었다.경상도 사람들은 제사때는 으례 상어전을 부처올려야 하니까 제사에 필수 찬 거리다.버스에서 많은 노파들 께서 머리에 무슨 나무뿌리인지 동이 동이 머리에 이고 내려서 어디론가 줄행랑 치길래 급히 자전거를 몰아 뒤따라 가봤더니 영천역으로 통하는 한약제 골목으로 가고 있었다. 거기는 대구 약령시장을 방불케 할만큼 약초시장이 왕성하다. 어떤 훤칠한키의 사나희가 예술가들이 곧잘쓰는 얼룩모자를 쓰고 " ...~니더 " 하는 상주말의 특이한 발음에 끌리어 가봤더니 생전 보지 못했던 시커먼 뿌리 몇개담은 종이합재기를 놓고 팔고 있었다.

무엇인가 물으니 자부치...지치 주치 여러가지 이름을 댄다.자세히 보니 그것은 아주 진한 검은색에 가까운 자색 이었다. 아하, 이게 바로 글로만 보던 주치 란 말인가 ?

논속에서 자기표시를 알리려고 흰눈을 보라색으로 물들인다는 바로 그 유명한 약초 더란 말인가 ?

대번에 한뿌리 사서 심어 자라는 모습이 보고파  얼마요 하고 물엇더니 기절 할뻔했다.6뿌리 한통에 9 만원 이란다.  이건 숫제 인삼보다 몇갑절 비싼게 아닌가 ?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처더보니 .오히려 이상하다는듯이 팔뚝만한것은 한뿌리에도 50만원 이상 나간단다.

아 ,이건 시골 약초꾼이 도시촌놈을 사정없이 후려치려는가 ?

그러나 또다른사람은 잔잔한것 몇뿌리에도 8만원씩 부르고 있었다.

또다른골목길에서도 주치라는약초는 그야말로 부르는게 금이었다. 아니 금값이었다.

마음을 돌려먹고 아까의 그 상주말씨쓰는 남자 청년에게 가서 난 딱 한뿌리만 화분에 심고픈데 천원짜리 한뿌리만 주소 했더니 낱뿌리는 팔수없고 한뿌리에도 2 천원 이상 치이는데

깊은산중에 사는거이라 화분에 심고 비료주면 금방 죽어버린단다.

자꾸 졸라서 죽든말든 한번 심어서 자라는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더니 다른통에서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크고 싱싱한 뿌리를 꺼내어 새싹을 떼버리며 그래도 싹은 많이 나올테니 한눈만 남기고 전부 따버리고 비료나 거름은 일절 주지말고 산흙 부엽때기만 섞어 심으란다.고맙소,고맙소 몇번이거 거푸 감사표시를 하고 천원주고 받았다. 시골장날 인심인기라. 봉지에 말아서 다치지않게 윗주머니에 넣고 약초거리를 두어번 더 둘러보고 ,곡식거리로 가보았다.

작두콩 만한 얼룩무늬콩을 발견하고 조금 사려 하니 해묶은 것이라 발아하지 않는다고 먼저 말해준다.

콩이 정말로 많긴 많았다. 눈을 끌만한 특이한 곡식은 철이지나서 없단다. 2 ~3월에 와야 종자로 쓸 곡식이 나온단다.

철물 거리로 가보았다. 첫번째 눈을 끄는것은 길거리에서 그라인더로 톱날을 갈아내는 능숙한 솜씨의 톱장사 였다. 종이처럼 얇은 그라인더휠을 12 볼트 밧테리로 구동하는 주먹만한 모터에 눈길이 갔다. 톱니를 갈때마다 자주 정지하려는듯 힘이 부처 보이지만 밧테리로 구동하는 만큼 그만해도 충분 한것같다.

납작한 망치로 톱니를 누일때는 대장장이처럼 강약 박자를 신나게 마추어 순간적으로 한줄 다 때려 누인다. 귀신같은 솜씨다. 그리고 나서 다시 톱줄로 톱니 머리를 살짝씩 눌러 갈아낸다.

한팔길이 톱니 가는데는 3000 원이요 톱값은 만원이란다. 저렇게 신명들린 재주꾼이 아직도 시골장에는 남아있었다.신기한 농기구 들이 많이있었지만 시간이없고 오늘의 관심사가 아니어서 지나첬다.술거르는 얼기미(치)와 키 는 아직도 많고 쟁기 등 소나 말이쓰는 농기구는 일절 없어젔단다.아주 아주 섭섭한 것은 불매간이 사라젔다는 것이다. 그럼 호미나 낫이나 괭이는 닳으면 새로 벼리지않고 버리는가 보다.

 

대장장이 없는 장터를 시골 장터라 할수 있을까 ?

 

전국적으로 대장장이가 있다 하면 아마 골동품 취급 할것이란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갈때도 입구엔 반드시 약초보따리를 풀어놓고 팔고잇었다.

산나물 보따리 장사들도 한보따리에 2만원씩 거래 하는데 참나물은 벌써 철이 지났고 여러가지가 두루 섞인 잡나물 이란다.

모종거리는 넓은뒷길에 무진장 펼처저 있는데 고추 오이 도마도 고구마 호박 파 등 등 감자와 양파 빼고는 모든 모종이 다 있단다.

묘목거리로 가보니 가지각색의 꽃나무랑 과일나무랑 오가피 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묘목거리가 적어 물어보니 묘목은 이미 철이지났기 때문에 거의 다 들어갔다고 한다.

 

가축시장은 없어젔는데 새끼토끼 한마리에 5천원씩 몇마리와 어린 토종딹 4000원씩 몇마리 뿐 으로 소 말 돼지 염소 개 고양이 등은 오래전에 없어젔다고 한다.어디서 왔능교 하며 이상한 사람도 다있다는듯 처다본다.그래 아주 크게 변한 것이라면 가축시장이 사라지고 옹기시장이 사라지고 포목시장이 사라지고 곡류 시장이 규모를 퍽이나 줄이고 대신 옷가게 화장품 가게 신발 가게 가 활발하며 음식점이 들어차고 그릇시장이 들어차고 꽃시장이 생기고 모종시장이 크게 번창 하는것이란다.

 

이렇게 시장 판도가 많이도 변해온것이다.

 

시장마다 마이크로 떠들던 약장수도 안온지 오래고 서커스단 역시 언젠가 부터 오지 않는단다. 오직 선거 바람에 스피커 소리가 시끄럴 뿐이다.

어떤 골목엔 들어갔더니 새끼줄이 듬뿍듬뿍 쌓여있엇다. 아직도 이게 팔리나 물으니 새끼줄 수요는 줄지않고 여전하단다. 조경업자들도 많이 사가고 시골에서 비닐노끈이 논밭에 흙속에 헝크러지면 농사짓기에 크게 방해되어 새끼줄이 많이쓰이고 짐부치는데도 여전히 쓰인단다.

생선가게도 요란하고 채소 가게도 많다.

 

찾아보아도 끝끝내 토종 종자씨앗 도매점포는 찾지못하고 시간만 낭비했다. 종자씨앗도 모두 노파들만 10 군데 가까이 노점을 하고잇고 그나마도 종묘상의 포장씨앗이 대부분 이고, 자루에 담은씨앗은 조금 씩 뿐이다. 고추는 모두가 종묘를 사다심기때문에 고추씨앗 파는곳은 난전에는 없고 종묘상에만 있단다. 도무지 토종씨앗도매상은 찾을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목적은 헛탕친 게다.

토종씨앗이란 지내들끼리 연줄연줄을 통해서 대량 구매 한다는 외삼촌의 말씀이 새삼 느껴 진다.

토종씨앗 구하는 방법을 바꾸어 생각해보아야 겠다.

흥농종묘상 에 들러서 카다로그 한권 구했다 여름용 종자 목록 이고 대부분 한봉지에 2천원 이상으로 여름용은 씨앗 가격이 높단다.

 

별도로 들판멀리 떨어지 있는 한약집산지구 로 가봤으나 거기는 완전 도매업 이었다.

영천까지 와서 이모양 돼고말았으니 본전생각나서 곰식초 담글 누룩과 아까본 지초나 더 사려고 다시 영천시장엘 갔으나 누룩은 공장에서 생산한 것이고 가격도 대구와 같았고 해서 약초골목으로 가서 다시 지초 한뿌리를 더 산후 오후 1시 반경 영천 시내를 벗어나 E-마트 벤치에서 집에서 가저온 영양식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아이스팩으로 안장도 식히고 좀 쉬다가 돌아오는길은 다른길을 택하기로 하고 하양 효가대 에서 갓바위로 돌아갈길을 결심했다.

 

효가대 3 거리--->하양파출소맞은편 효자로--->와촌행--->와촌 면사무소지나 동강 1리로 좌회전 --->박사리--->음양리 고개넘어--->달마 도 그림그리는곳 에서 대구쪽 갓바위 갈림길--->동화사 갈림길 --->백안삼거리 기사식당에 서 콩비지 얻어서 --->불로동--->복현5 거리 로 도착

 

돌아오는길의 동강리 길가에서 마늘해기 가지고 다니는게 보여 팔것이냐고 물으니 빙긋빙긋 웃더니 한참만에야  이지대 마늘밭에는 마늘만 삐대지 않는다면 마늘해기 뽑아가는건 아무제한 없단다. 그래서 지체없이 마늘밭으로 들어거서 고랑따라 걸으며 마늘헤기(마늘줄기) 를 한배낭 뜯어넣었다.

 

붉은마디 마늘해기

 

여기의 마늘해기는 마디가 붉기 때문에 아주 특이하다. 그래서 영천마늘이 단맛이란다. 

 

박사리 까지는 오르막이라 몹씨 지처 자전거를 내려 걸어올랐지만 그리고 음양리 끝끝 내도록 걸어 롤랐으니 시간이 다 잡아 먹혔다.

시원스레 왕복6차선 탄탄대로가 열려있었는데 음양리까지는 4차선 이지만 곧 6차선으로 뚫린단다.음양리가 점점으로 더높은산도 없는 구릉지대 인대도 밭에는 가믐든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도로에 물기도 축축해있다.

참 이상한 노릇이다.어째서 가믐이 타지 않을까 ?

도로변 여기저기 땅 ! 매매 팻말이 무수하다. 땅투기꾼들이 다녀간 흔적 이리라.

음양으르막 새길 조성지에서 나딍구는 숫 소핑겅(황소목에 걸어주는 웅장한 소리내는 작은종)부셔진것을 한개주어 때려보니 소리는 제대로 울린다.제작형태로 보아 불과 20여년전쯤인것이어서 골동품 가치는 없는 청동주물이 아닌 조잡하게 쇠파이프를 잘라 용접해 만든것이엇지만 이것도 요즘은 보기 드믄 것이라 물에 씻어서 가저 왔다. 붕알도 고리도 다 떨어저 나간 것이다.

 

 

경상북도 경계간판이 보이자 갑자기 길이 협소해저 왕복 2차선 시골길이다.

대구쪽에선 이길의 개발필요성을 인정치 않는것 같다.

경산쪽에서만 열을내어 대로를 닦아 놓은 것일까? 와촌 갓바위 코스를 위하여 ?

 

어쨌던 길이란 같은폭으로 닦아놓아야 하지 않을까.

 

왕복6차선 중소 도시 길을 광역시 진입하면서  왕복2 차선 도로 라니 !

 

대구시 의 행정력은 반성해야 할것이다. 이건 말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