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태전교 팔달교 다리건설 예기

2005. 2. 26. 00:28250. 이야기

 


 배분상 할머니 의 이야기 (칠곡 읍내 4동; 대천에 살으실때 )
              
           ------ 태전교 다리 건설 이야기    1916 년 경 ) ------
                                                      1998 년 8/23 메모 2005 년 2/22 정리
가죽징 공굴놇때  들망 고마지 등에어피 신작노따라 가밨는데 온 민사람이 다나와 기겅볼만했지.

태전교 다리 놓을때 학정4동에 사시는 고모부 등에 엎혀 처음생긴 포장도로 따라 가보았는데 온 칠곡면 사람이 다 나와서 구경 한번 볼만 했지 

걸강에 우 몰리서서 흰들맥 입고 갓시고 담뱃대 꼬나물고 허연 술 얻더무 가미 밨째.

시냇가에 여럿이 모여서서 흰 들막 차려입고 갓 쓰고 담뱃대 치켜들어 악물고 막걸리 얻어 먹어가며 보았지
새끼줄에 큰 돌믱무까서 우시 달라들어 들첬다 널짰다 카믱서

새끼줄에 큰 돌덩어리 묶어서 우루루 달려들어 처들었다가 떨어뜨렸다 해가면서

에 ~ 헤라  망끼 ! 카마 쿵 ! 카고 돌띙 툭 널쭈고 케사미 땅 다지가아 일해샇팅 마는 냉즹 들어빙이
 가죽징 공굴 은 넓께낳서 상 받아꼬

힘껏 ~ 들어올려 !  내려처라 ! 하고 고함치면 쿵 ! 하고 돌덩이 떨어뜨리고 해가면서 땅 다저가며 일해놓더니만 나중에 소문 들어보니 태전교 다리 는 넓게 놓아서 상 받았고
원대꺼리 골굴응 비좁끼 놉끼 낳서 댕기기 어러버 냉즹 벌바다서 징역살고 돈토했따 앙카뎅.

팔달교 다리 공사는 비벼다녀야 할정도로 좁고 너무 높이놓아서 자동차 다니기 어려워 나중에

처벌 받아서 징역살고 벌금도 물었단다,아니그렇겠냐
일븐사램미 설기하고 조신사라믄 말띄기나 박꼬 자갈이나 푸고 심 씨이게 고상 망이 했데이.

일본 사람이 설계하고 조선사람은 말뚝이나 박고 자갈이나 퍼나르고 힘 많이쓰고 고생 많이 했단다
가죽징 공굴은 지해에 다낳고 원대꺼리는 큰물가여 떠니러가마 건지다놓코 하다븽이 손해 망이밨꼬

태전교 다리는 시작하든 그해에 완성했고 팔달교 다리는 홍수나서 떠내려가면 (철골 )건저다 다시놓고 하다보니 손해 많이 보았고

냉죙 딍이 떠러저 억지로 끝냉이 잽피갈쩨 즤뫽이 싀똥가리 빼묵꼬 돌가리도 빼뭇다꼬 어굴키 늬명 씌도 누가 구해볼요랑이 있어야지.

나중에 돈이 떨어저 억지로 끝내놓으니 붙잡혀 갈때 그 죄목이 철근숫자 줄이고 세멘트가루도 줄였다고 억울하게 누명 씌워도 누가 나서서 해명해서 구해줄 질서정연한 방법이 없었지

일븐사램이 즈거끼리 잡아가는데,말하믄 잘몬하마 고망 킬나지.

일본 사람이 자기네들 끼리 잡아가는데 ,말참견 한번 잘못 하다간 그만 큰일나지
질기도 디기 질고 높끼도 억시로 놉끼 잘낳는데 천지 모리고 까불미  잡아갓쩨, 긜 와 잡아가노.

길이도 굉장히 길고 높이도 엄청 높으게 잘 놓았는데 전혀 실태도 파악치 못하고 웃줄거리며 체포 해갔지,그런이를 왜 잡아가노 ( 궐 ---->그런걸 ,그런것을,그런이를,그런일을 한사람을 : 궐 말라카노  ----> 그런일을 뭐하려고 하노 )
내가 느거 미기 살리닝라꼬 반팅 능금이고 건니 보마 얼매나 시원키,짱빼기는 강물삧체 삣치마

내가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고 함지에 사과 담아 머리에 이고 (팔달교) 건너 다녀보면 얼마나 시원한지,이마는 강물 에 햇빛이 반사되어 비추어지면
빤짝빤짝 따갑데이,그뢰 궐 건너가마 고마이 질깡 차댕길때마다 문지뿍띠가가 텁시리 한기 쉼이
칵칵 매키고

------------------작업 진행중 찌는듯한 삼복 더위에 잠시 휴식 중임-------------------

신발짝은 껌댕이길깡 자꾸 쩝절쩝절 달라붙고 그카다 꼬꾸랑공굴 가마 거게 늬큰오망이
 차찡기어 이번 했던 삼산빙웡이 앙있나,거 하믄 딜다보고 돈하잎 또 몬쭈고 능금 한쪼갱이 홍씨
하나 딜다주고 물한모금 얻더묵꼬 일나서 그질로 대구역전 앞에 청까시장 가여 막 삐집꼬 드가서
파라사-ㅎ제.앙이까징도 그다리에 차 망이댕기제 ?
대구인강이 불어낭이 지게지고 반팅이고 올매나 갖다 나리는지
날마다 날마다 흰옷재랙이 다리우에 허옇케 줄저서 펄럭펄럭 카도록 댕깄쩨.칠곡꺼 거 안갖따 팔마
어데 다 갖따 팔아묵노,그싀다리 다 딿랄라카마 조신팔도 다따라아여 남을끼 업시라야 안딿켔나 ?
웨 그시다리 고속도로낼때 다 케물카여 옆페 더 크게낳아 합치서 디기 널파낫는데 그라고도 어무이
얼매나 정구지 캉 무리 보따리 이고 복현동 시영아파트 우리집에 자주갖다 댕기사 놓코는 하믄도
안댕기본 끄치 자꾸 옛날 좁은 팔달교다리만 캅니꺼.하마 벌써 파무처 숨가진 그 다리가 머가
쫗타꼬 춤이 마리도록 쫑일 칭찬만 하는게.일본살때 얼매나 큰거 망이밨땅켔는게 ! ?
엉이 니 지금 머락카노?허허참 이럴땐 꼭 노망든 할마시 같다캉이.했다칸말 또하고,쫌있다 또하고.
인자 좀 고망 카이소,생진 이자뿌지도 앙하고,아-들이 저래 앙이자뿌망 시험에 만날100점 물끼이다.
인자 고마 나갈라 카구마! 바쁜데 똑 까튼 말 자꾸 들을 시강이 없꾸마.
사람마 눈에 띄마 뿌란차 놓코 자꾸 실때없는 소리 항이끄네 아무도 안볼라 앙카능게.
싫타 칸말 안들은 갑꾸망. 와 어뭉이 잣테 아무도 안올라 카는지 아능개 ?
첨들으마  재밋어 케도 자꾸 들으마 딱 ! 싫쿠마. 기가 따갑또록 안들었능깝따.
나도 늘그마 저렇케 델라능강 . 으이그 입다물고 잠만자야재.입또 안아픈깝따.
 

-----당시에 새로 생긴말 들-----

공굴 --->다리를 말 하는데 어원은 콘크리트 이며 다리 건설때 유일하게 콘크리트 공사를 했기 때문에 다리를 공굴 로 말했다.

신작노 --->새로만든 길 이 아니고 새로운 포장도로 즉 아스팔트길이 처음생겼을때 그 아스팔트길을 새로운 공법으로 만든 길 이란뜻임

차 --->수레밖에 없던 시절 자동차 가 생겨났음

돈 토했다 --->아직 벌금이란 말을 이해 못하던 시절, 돈을 되돌려준다고 이해하고 있었음

설기 ---> 설명서 붙은 그림 즉 설계도 를 뜻함

싀똥가리 --->콘크리트 공사때 쓰고 남은 철근토막

돌가리 ---> 세멘트 가루 를 말함

뻣치마 ---> 빛이멀리 내뻗어 닿으면 즉 햇빛이 강물에 반사 된 편광 을 말함 

신발짝 ---> 새로나온 고무신, 여자용은 짝이없어 왼발 오른발 상관없이 신었다.집신을 마감하는 시기임 

 

======= 중요한 어원=======

가죽징---->가죽쟁이 들이모여살던 터전으로, 그들은 일반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썩는 냄새 지독한 가죽작업을 하기 위해 부근에 사람이 살지않는 허허벌판 이어야 하고 씻을 물이 많아야 하고 펴널어 말릴 자갈이 많아야 하는 천혜의 땅인 자갈밭 갱빈에 터전을 잡아 살아가고 있었더니 어느덧 그곳을 가죽 다루는 이들이 사는곳 이란 뜻으로 가죽징이 라고 불려저 왔는데,그러던 어느날 그 터전 에 듣도 보도 못한 커다란 다리를 놓게 되니 이름하여 가죽징 공굴 ,곧 태전교 다리였던 것이였다.

 

망께 ----> 요즘도 운동선수들이 이겻을때 자축의 뜻으로 즉석에서 자기팀 감독을 번쩍처들어 하늘로 던저올렸다가 떨어지면 받아서 다시 던저 올리곤 한다.그것은 던저올리는데만 힘을 쓴다.

그옛날 집터 를 다지거나 성터를 닦을때 참껫단을 뭉처묶어서 돌바닥에 내려처서 참께 를 털듯,

아름들이 돌덩이에 밧줄을 묶어 꼬리를 여러개 달아 여닐곱명이 각기 꼬리 하나씩 잡고 사방에서 서로 당겨 팔을 처들면 돌덩이가 해뜨듯 하늘로 높이 올라간다. 떨어질때 허리를 굽히며 팔을 아래로 힘차게 내려 당기면 탄력을 받아 돌덩이가 힘차게 땅바닥에 꽝 ! 하고 내려 꽂혀 땅을 단단히 다지는 기초공사를 하였기 때문에 수십년이고 수백년이고 지반변동이 없어 고 건축물이 오래도록 쓰러지지않고 버텨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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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망께를 이렇틋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사라저 가는 옛 언어들의 아타까움 과

우리말의 근원을 좀더 연구하여 고대언어의 면모를 들여다 보려는 것 뿐이다.

.....에 ~ 해라 ! 망끼 ! 카미 돌띙 툭 널쭈고 케사미....... 에서 보듯

애---->힘쓰다,애 많이 뭇다---->힘 많이 썼다.

해라 ---> 해를 떠올려라 ,돌덩이를 처들어 올려라 .

망끼 ---->( 깻단 묶은 꼬랑대기)꼬리 를 힘껏 아래로 당겨 " 내려처라 "( --->芒 : 꼬리망 )

라고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냥 단순히 동작에 맞춰 뜻도없는소리 치는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말의 깊은뜻이 숨겨저 있을것 같아 가설 을 세워 보려는 것 이다.

다시말하면

 

 에 ~ 해라 ! 망끼 ! 힘주어 당겨 ! 해떠오르듯 높이 띄워 ! 깨털듯 내동댕이 처라 ! 

 

 라는 뜻의 고함을 질러가며 노랫가락에 맞춰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풀이 해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고 보면 뜻이 맞아들어가는 것이다. (애 ~ 해라 ! 망께 !)   를 외치며 뜻을 새겨보면 분명 박자와 동작 이 잘 일치하고 있다.

 

,,,할때는 허리에 힘을 주고 꼬리줄을 한팔 좁혀 당겨 오므려 돌이 움찔하고 움직일때 

해라 ,,,할때는 팔을 위로 처들며 몸을 바로세우면 돌덩이가 해떠오르듯 하늘높이 떠오른다

망끼 ,,,할때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팔을 아래로 세게 잡아당기면 떨어지던 돌덩이가 가속력을 받아 힘차게 땅바닥에 내려 꽂혀 땅이 다저 지게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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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 우리는 그동안 어기여차 어기여차 ,에해 이히 여어어어~, 에 해야 듸야 ,에~ 상사 듸야 ... 하는 후렴 을 옛 민요 에서 많이 보아 왔으나 그 뜻 풀이는 어디 에도 없는 것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으로 발생지 지방 사투리 를 모아 어원을 추려 뜻을 새겨 가설을 세우고

옛언어를 연구하고 우리 말과 글이 제대로 된 소리값을 되찾아갈때 우리말과 글의 우수성 이 한글을 뛰어넘어 옛 가림토 문자의 소리값에 가까히 닦아가는 길이며 반만년역사가 아닌 12750년의 역사를 되찾게 되는 길이다.

 

우리글의 소리값이

한글표준화로 잘려지고

문뻡글로 망가저서 이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려 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 문화는 단군과 고조선에서 시작 하는게 아니라 멀리 태고적 부터 강성 해오다가

욕심없는 단군과 고조선 시대부터 서서히 연약해지고 수축되어(5000 년역사란 그이전의 역사를 철저히 단절시킨 왜곡의 조작에 현혹되지말라 !) 한반도 이내로 몰려들게 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가림토 문자는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근거지를 잃었을뿐 세계 각국에 여실히 남아 있다.우리네 조상이 온세계를 다스렸고 문화가 퍼저나갔음을 증명 하는데 ,우리만 소리글 에서 문뻡글로 소리소문없이 슬쩍 바꿔치기 하고 찬란한 문화를 말살 하려 드는 망국의세력이 지금도 엄연히 암약 하고 있는것이다.

 

언젠가 중학교 동기모임을 지리산에서 가젔을때 ,난 거기 삼성굴 입구에다 살구묘목 어린것을 몇포기 심느라 꾸물 대어 늦게 들어갔더니 거기 이상한 책내놓고 이상한 설명을 하는데 들어보니

인도의 석가모니도 우리 민족 이며 단군 모자를 쓰고 단군복장을 하는 우리의 한민족 이었으며,

한글도 수천년전부터 우리민족이 쓰고있었던 가림토 문자 에서 비롯 했으며,전세계에 가림토 문자가 퍼저 있고 우리네 조상이 전 세계를 다스려온 증거로 세계 도처에 우리의 가림토 문자가 돌에 새겨저 남아 있다고 말 하는 것이었다.

저 흉악한 일본인이 우리의 오랜역사를 깍아내어 뭉그려뜨리려고 우리강토에 널려있던 옛문서 30 여 만권을 강제로 몰수하여 모아다 불사르고 2 만 여권은 몰래 빼돌려 자기네 나라로 훔처가서

연구끝에 우리의 역사를 5000 년으로 단절시켜 역사왜곡을 시작 하여 그이전의 7000 수백년 역사를 완전 말살 시켜 놓았다.

그리곤 철저히 위장 교육 으로 5000 년 역사만이 한민족의 역사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배워 온 것 이었다.그렇게 일본물먹은 썩은 역사학자들에의해 아직도 계속 왜곡해나가고 있는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크게 깨닳아 우리민족의 이러한 원대했던 긍지를 가지고 새로이 대거 노력 해야 할 때이다.정치로 세력으로 허세로 세력을 불려 나갈때가 아니라 ,사학자 들은 우리민족의 문물을 연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운암동 블로그에는 유난히 많은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그것은 사투리 속에 많은 고대 문화유산

이 남아 있다고 믿고있기 때문 이며 당연히 보호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는 일본문화의 발상 모태이고

함경도 와 평안도 사투리는 유라시아와 몽고벌판을 누비던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고

경기도와 강원도는 이미 쇠퇴일로를 걷고있던 단군시대 문화가 간직도어 오고 있는것이다.

 

사투리와 고대 언어 와는 떼놓을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고대 언어는 바로 경상도와 전라도 의 사투리로 이루어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민족이 고대 일본을 지배 해왔음은 불을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

그러니 그들은 우리의 옛역사를 깡그리 말살해놓아야 그들의 고대 역사가 그들 고유의 역사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으니까 ,그들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주장을 완벽히 꿰 맞출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역사를 조작 하고 날조 하고 강조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것임을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

 

그리고 거기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소리글을 문뻡글로 몰래 바꾸어 놓고는 문법에 맞지 않으면 아예 글짜가 파괴되어 마치 외계인이 작난 친듯 깨어저 나타나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사투리 표기 말살 정책 인것이다.즉 우리스스로가 가림토문자의 소리값으로 영구히 접근 금지시키는 짓거리 인것이다.사투리로 표기할수 없어야 영구히 옛역사를 깡그리 지워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놓고는 문뻡글이라는 제목을 속 빼놓아 어린백성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것이다.

 

이세상 어디에도 컴퓨터가 글자표기를 가로막는 작태는 없는것이다.

우리만 문법에 맞지 않으면 글자가 깨지도록 하고 있는것이다.

 

asdABCDRFdskhfww  이렇게 아무렇게다 입력해도 입력한대로 출력해내는 영어라고 불만터뜨리는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단 한명도 없는것이다.

 

우리만이 문뻡에 맞지않는다고 글자를 깨지게 만들어 놓고 있는것이다.

역사를 말아먹을 소행 인 것이다.

일본이 조작 왜곡시켜놓은 단절된 가짜역사를 진실인양 백성을 영구히 속이기 위한 짓꺼리다. 

 

소리글은 당연히 자연의 소리가 발생하는 음원에따라 소리를 자유자재로 표기할수 있어야 한다. 

 

 다행 스럽게도 daum.net 의 블로그 에선 그따위 문뻡글을 적용시키지 않고 자유롭게 사투리를 마음껏 쓸수있게 소리글을 지켜오고 있어 감사할 따름 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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