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습기 시절

2013. 7. 21. 00:11300.체험기

옛추억 깊던 직장 옥상에도 취직하러 갔떤적 있어 옛 동료들의 비난도 무릅씨고 포도청 속에 드갔따.

 거기 사장도 옛 동료 였따. 어러분 사정이야 자기나 나나 똑같은 처지나 그가 좀더 경각에 허덕엿따.

 이튿날 출근해봉잉 생산반장 조차도 옛동료?   여자 반장이라 쥐꾸멍속에 드갑뿌고픈 심정

 얄굿께도 생산품도 내가 옛날에 교육받던 업체 꺼 였따. 모든게 완정잉 함정에 빠징 극코 사면초가 였따.

점심때 마다 식당에서 맞대는 옛동료의 눈길도 무섭고, 말을 걸어오면 외면코 싶었따.

 

형식승인이랑 도면작성이랑 실험장치랑 실험이랑 생산표준화 품질관리 등 다 떠맡았따.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금형과 재료가 너무나 달라 외형적 사양이사 눈깜꼬 야옹이지만 물리적 특성사항은 완영이 다른세계였따.  고상고상 끝에 밀봉액을 연구해냉기 일본인 조차도 와보고 작업관계 일일히 채크 하더니 알으켜 달란다. 서로가 협력우호관계이니 선뜻 다 제공했는데 그쪽도 역시 우리것을 적용하기엔 일본과 한국의 화확재료가 달라 결과가 틀려 적용할수 없딴다. 그들은 값비싼 Si 계 이고 우린 염가의 epoxy계

이 밀봉작업은 워낙 일손이 딸려 사모님이 직접 밤늦게 까지 작업해야 이튿날 경화가 끝나는것이다.

속건성은 내구성 없어 몇달지나면 고온작동에 수축과 균열로 공기누설되어 몬씬다.

제일 고민꺼리는 값은 싸지만 불량률이 워낙높아 반조립 상태로 100%특성검사해야하는 대만산 팬 이었따.

20%불량은 보통이요 60% 가 넘을때도 있었따.완제품검사에서 불량해체 하는것도 10 % 이상이었따.

참 애매한 검사는 베어링 소음 판별 사람마다 청신경 예민성이 달라 db 규제도 불가능인편.

완충재료는 일부 미국산을 쓰는것도 어찌할수 없었꼬 이유는 극한상황의 압축내구성과 밀폐성능 차이

제일 고상항거는 카다로그 인쇄 였따. 케드 도면이 적용안듸였꼬 수정확인을 번벙이 생략해서 틀려진되로 다량인쇄 폐기처분당하면서도 번벙잉 즈거끼리만 확린하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따. 나중엔 수정딱지 붙이라고 가저왔따. 일본측에서 완강히 거부해 다시 인쇄할때는 내가 찾아가 밤새도록 수정작업을 일일히 확인해야했따. 물품 자체는 상방 실험성적이 다 좋아서 통과 됐으나 일차 선적후 큰 문제가 생겼따.

포장박스가 그쪽 종이보다 내수성 탄성 인쇄선명도 가 행핀없시 떨어저 운반하역등 유통과정 불량수량을 우리보고 책임지란다. 울며겨자먹꼬. 포장사양을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치로폴로 보강후 수출하면서 차츰차츰 박스재질을 바꿀연구를 했따. 수성점착성 부재료를 내수경화성 으로 바꾸자니 최소주문량을 어머어마하게 요구해와  이건 협상자체가 불가능 했따. 본의 아니게 윗단계에 종용해서 간접루트로 압력행사로 해결하고는  사람이  말이야 조용조용 간청할때 고분고분 타협해야지 꼭 얼굴 붉히고 나서야 께름직히 수락 이랑잉

 

정상조업 상태에서 물러나오며 제습기 기판 하청 원해밨으나 믹키들지 않아 어색하게 영웡잉 끝나뿌맀따.

어깨 약해 밀봉스펀지 자르기는 그야말로 얖꾸리서부터 어깨 까지 근육 경직통증으로 온몸이 돌떵이 끅코

내 나이가 있는데 혼자서 30 ~40 k 씩 나가능걸 계속 쌓재기를 강요 하는데 내 허리가 지탱이 안듸므로  .....

 

 

 

 

 

 

 

 

 

 

 

 

 

 

 

 

 

 

 

 

 

 

 

 

 

 

 

 

 

 

 

 

 

 

 

 

 

 

 

 

 

 

 

이 모든 스케취가 후임자는 모조리 고성능 카메라로 실사 떠서 실감익께 생산할동 한단다.

 

 

 

 

 

 

 

 

 

 

 

 

 

 

 

 

 

 

 

 

 

 

 

 

 

 

 

 

 

 

 

 

 

 

 

 

 

 

 

 

 

 

컴이 한창 486 으로  떠오르며 물갈이가 시작 되던 시절 486 DX-II 는 황소 한마리 보다 월뜽 갑나갔따.

그런 후 586 이냐 686 이냐로 신문마다 다루덩이 갑자기 Pantium ---II 냐---III ---- 냐

---IV 까지만 소문으로 들었을뿐  도지잉 추종 안듸여 만 갔따.

1 Ghzs 장벽도 무너지고 있을 무렵

전자에서도 마지막으로 손을 녹코 말았따.

신문지상에서 LSI 라는 단어도 완정잉 사라저 갔꼬

참 시상앙 이럭키도 벙개끄치 사정업시 막 핑핑 빈해가누나 ?

 이카다 전자 산업 엄시망 시상 우예 듸갈랑공 ?

 

하루가 다르게 가 앙잉라 1초가 무섭끼 낡가가고 탄생하고  ,  

                        눈코 뜨기전에 신기술이 막 코짠댕이를 밟꼬 지내갔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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