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밤 의 어머님 께로 생각나는것

2008. 9. 4. 03:05250. 이야기

우리 어머님은 참 많이도 채소 보따리를 이고 들고 걸어 다니셨다.

우리 가족의 집은 아무리 멀리 떨어저 있어도

아무리 복잡한 길로 이어저도

한번만 가보시면 담 부터는 금방찾아 오셨다.

 

자리에 누우신 10여년 동안에는

여동생의 이사간 집도

부산 누님네도

서울 누님네도

경산 형님네도

외삼촌네 제사 때도

.....

하도 조르시기에

업고 계단을 내려서

어릴적 들 건너 대천 동네친구이면서 같은 동네인 운암동으로 시집오셔서

같은동네에 같이 오래 오래 살으신

대천댁을 찾아 미리내 라는곳으로 차로 모셔서

꿈에도 그리던 친구를 만나게 해드렸다.

 

그랬는데 몇시간 후에 보니

절대로 그라망 안�다.

늬 욕먹이러 그란델 갈라카나

 

니 우짰키나 니집에서 살아야 한다 케�는 소리가 방 밖에로 흘러 나왔다.

어머님 께서 친구분께 요양원으로 가고싶어 하셨던 모양이다.

 

자리불갈이 계속듸자

마루에 나와 잠시 햇빛쬐던것도 불가능 해지고 부터는

아예 누구네 집엘 ....말을 꺼내시지도 않으셨다.

 

그리곤 밤새 온몸의 격심한 통증으로 앓으시고

우리 소피아 혼비백산해서 급히 혼자 병원으로 모시기도 여러번

병원에 가봐도 별 뽀죽한 수가 없었다.

닝겔주사에 진통제에

괜찮아지면 다시 집으로 모시고

통증약이 떨어지면 또 앓으시고

 

짧은 밑천으로 한방책을 뒤저기며 증상과 맞는 통증약을 연구했다.

 

---------2000 년 9/28 할머니 가슴뼈다친 통증도진때--->극심한 산발적통증 한시간 에도4 ~ 5차례 우신다.
       처방---->작약 감초탕
      약제 조제---->생작약 2손가락,생황정 3손가락,감초20쪽,물 1.5리터+1.5리터(초탕,재탕)
                    급한김에 30분만에 복약시킴.
     복약--->100 cc 복용후 10분쯤지나 눈물 그치고,잠시후 앓는소리 그치고, 일어나려 하신다.
             2시간만에 또 100 cc 복용후 그만 방에서나와 마루에 머무르시다 춥다고 들어가신다.
             기리곤 옛날예기 시작하신다.

     6.25피란때 무태 구산네제실에도 자리가 없어서 위양간에 멍딩피고 미칠 있으미
     니힝캉 의태캉 제실뒤 꿀밤, 밤 서로 딸라고 쫓차댕기미 업퍼지고 케샀타가 미칠뒤
     강건너 상각 인환 집으로 또 피란가서 거서는 오래 있었다. 니 그때 생각나나 ?예 그라망 예!
     밤이면 불다끄고 2층에 전등하나마 불서고 밖에서 보망 안�다꼬 검은주름종이 자루를 주루루
     피 니루마 얼매나 참앴는지 인한형님 니러가고나망 와르르 달려들어 그놈의 주름종이를 올렸다
     니랐다가 카다가  밌뿐 안케서 그만 한쪽귀팅가 쪼부라저 울고 있으마 실미시 올라와서
     곤치놓코  누가 대문 탕탕 때리마 번개가치 어데갔뿌고 우리는 불탁 껐뿌고 숨 지기고 자는척
     하고 안그랬는게 앙, 앙이까징 그거 앙이잤뿟구나. 그때가 전등불 첨 기겅안했는개.
           ------ 등화 관제 훈련 -----   을 거이 매일 했제.
     인자 참 캉이카제 닝 그때 조야고개 넘어갈때 짐댄다꼬 루끄사끄 삑기강 도랑 땐지 났뿌�이
     고망 안따라오고 기니러가여 기여이 찾아 울러미고 올라와서는 구산네 위양깐 에있을찍에 일분서
     가온 그 리꾸사꾸 를 꼭끼차고 뽈 수까락으로 혼자 날름날름 퍼무미 암만 돌라케도 한수깔도
     안주미 내뿌리낭놓고 와 돌라카노 낭 그거 차잘라꼬 도랑 구불미 니러가여 가왔는데 냉좽보이
    장갱이 끌키가 피안났나.그이야깅 핑상 앙이자뿔끼고 ,이자뿌지도 않는데 곤백뿐도 더안케샀나.
........참 이상한건 나중에 커서 밑뿐이나 그길을 더듬어도 도무지 차즐수 없는건 왜일까........
  조야고개를 넘으미 무태로 이어 지는길이 도무지 없었고 내 기억에도 영 앞뒤가 연결되지않는다.
  낭 그때 구산네 제실 마당서 보마 아주 자테 기러기 골짜기 가 �고 거기로 엄마가 가서 고치도
    따오고 식량도 가저오고 다기억 나는데 ,그라고 거기 도착할때는 저녁때라 솔밭에서 짐 니루고
   부산누나 가 밥짓고 경산 형님은 깔비 끌어오고 밥 다짓고나서 나무뚜껑 들시고 냄비 복판에만 조금
   깔릿는 쌀밥은 아부지 끼라미 딱떠서 따로 나뚜고 우리는 꽁보리밥만 퍼묵고 그땐 큰형님이
   안보여도 별로 관심없었는데 나중에 상각에서도 오지않았다. 학도병 가신때다.
   지넉묵꼬나서 제실ㅇ


2004년 7/16 할머니 장마기 통증약
     생작약 100 g , 감초 10 g , 물 2 리터를 1.5 리터로 닳여 한컵만 드셔도 20분 이내로 효과
              나타나고 2 일 만 드시면 끝나버림. ........................................................................................

12/2 벌써 며칠째 할머니 께서 배변이 안되어 즐기시던 감도 드리지 않고 배변 도우느라 힘들었다.
     할머니 의 배변이 원할치 않아 하루에도 몇번씩 대변보신다고 억지 부리시고 헛수고만 했다.
     우짤쭐 몰라 우리 소피아 장갑끼고 대변파내려 하는걸 한사코 말리고 안되면 내일부터 관장 하자고 한후
     우선 작약감초탕(3일분)으로 극심한 배변통증을 처방하고 다음날부터 소피아 몰래 곰보배추
     다린물 과 작약감초탕을 썩어서 한컵씩 하루 3번 드렸더니 쑥처럼 흑녹색 묽은 배변 시작
    마침내 일주일간 배변통증없어�음.
    무슨약이냐고 묻길래 작은병은 항문통증 없애는약이고 큰병은 창자의 활동을 활발히(연동운동)
    시키는 약이라고 설명해줬더니 난도 그런 약 좀달라고 한다. 농담은 아닌듯,곰보배추를 보여
     주면 기절 초풍 할게다. 그래도 일주일간은 계속더 곰보배추다린물 복용케함.
12/16 어제저녁부터 곰보배추 달인 물이 없어 복용중지 했는데 별다른 이상은없고 소피아가 앉아서
     식사 하시라고 하자 일어나 앉아서 혼자 이웃집에서 가저온 잦죽을 잘 드신다.
     이젠 곰보배추 다리고난 찌꺼기로 엉덩이 욕창에 문질러 치료 할 차례인데 소피아가 들을지 ?
     양팔이 꼬챙이 처럼약해서 벌벌 떠시더니 이젠 숟가락질도 할수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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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 통풍   ///////
        손발가락 마디가 언제부턴가 퉁퉁붓고 고통스려 하셨지만
         그게 병인줄은 몰랐고,젊어 보리밭 김매기때도 그리셨던것으로 

우리 소피아 늘상 할머나 곁에서 밤새도록 주물러 드리며 눈이 퉁퉁 부어 같이 고생하고
     요즘들어 밤새도록 앓으시기를 몇달째 ,드디어 밤만 되면 기성을 지르고 우셨다.

10년 병 수발에 효자 었댔지만

우리 소피아 낮엔 직장에서

 밤엔 할머니 곁에서 온몸을 구석구석 주물러 드리기를 15년 넘게 해왔다.

 난 솔직히 배변 수발한 기저귀 전달받는 순간만 으로도 역겨웠는데

우리 소피아는 아기 다루듯 잘도 견뎌낸다.

병원의 통증약도 나날이 효과를 잃어갔고 밤에는 더욱 심하셔서 거의 울부짇으시고

  난 건너방에서 귀를 막고 잠을 청했고

우리소피아도 나날이 수척해저갔다.
       날이밝자 곧바로 작약감초탕으로 우선 통증을 해소시키고 종일 책과 씨름해서
   당귀점통탕 처방해서 잘낳긴 했는데

????연유로 쓰지말래서 중단 했다
   통풍에  헤로운 음식--->맥주,멸치,어란젖갈,정어리,청어 등 등푸른 생선 금물
   그후론 응급 처방으로 작약 감초탕 가끔 썼다.
  
      ================= 계지작약지모탕 ================ 을 찾았다.
     주내용은 관절의 역절통증을 너무 오래 방관 하여 손발가락 마디에 옹이 처럼 생긴혹의 통증
      을 낫게하고,쇄약해진 종아리를 회복케한다.  ------> 열이 있을때는 못쓴다.
    처방전---->
    통풍에 해로운 음식-->맥주,멸치,어란젓갈,청어 금물.
1998년 10/28 계지작약지모탕 처방
       11/24 계지작약지모탕 처방
       11/28   요리 불갈로 복용중단
     
     
2003년 9월 19일 할머니 옹이관절 특효약 대 성공(작약감초탕 응용)


        생 둥굴레  80 g
        생 작약   180 g
        생 미물근   5 g (속수자 비슷)
        감초       10 g

            물 다섯컵부어 한시간 닳여서 한컵씩 하루3 번 복용

 

일일히 산에가서 미물근을 케오기도 쉽지않아

둥굴레, 작약, 미물근을 할상 쓸수 있게 꽃밭에다 많이 키우웠다.

둥굴레는 방광통증을, 미물근은 배뇨를 잘 시키는 명약 이었다.

이것들이 작약 감초탕과 어울어저 기묘하게 할머니의 완고했던 통증을 몰아낸 것이다.


               어쨋거나 통증에선 완전 해방, 밤마다 여우 울음소리,괴성, 벽을 치며 쿵더덕 몸부림
             그동안 내가 너무 불효였지.  3일씩 복용을 5회

         드때부터 나도 밤잠을 편히 잘수 있었다.

내가 한약을 알면 얼마나 알겠나 마는

 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통증을 깨끗이 몰아낸 한방의학이 자못 신기했다.

 

그런대도 우리 소피아는 여전히 할머니 곁에 붙어 살아야 했고

 세탁기는 거의 쉬지않고 윙윙 돌아갔다.

할머니 께서도 손수 이부자락과 요때기를 잘라내어 작게 만드셔서

빨레가 쉽도록 배려해 주시는걸 보면 정신은 말짱했고

더구나 손님이 오면 더더욱 신나게 예기를 이어가서

손님이 오랫동안 떠나실수 없게 만들므로

예기를 억지로 중단시키도 했다.


       낮에는 온갖 바지랑 치마랑 꺼내서 가위로 자르고 꿰매고,저러시다 노망들까 염려했지만
          근사하게 잘고치시기에 내가 오히려 잠옷을 부탁했더니 긴거2개 짧은것 2개 만드셨다.
       이불도 새로 따서 고치시고......  몸이 안아프면 그냥 못계신다.                  
      이후 약을 2006년 12월 22운명하실때 까지 병원에서도 이상이 있을때마다 조금씩 드셨다.
        오랜 세월 보아온 것인데, 몸이 아프기전에 반드시 눈주위가 발갛게 변색하면 반드시 그날중으로
        통증이 오고 하루지나면 크게 고통 받으므로,항상 눈을 관찰하고 있어야 한다.

 눈 주위가 붉다 싶으면 즉각 미리 다려서 냉장고에 보관한 약을 따뜻하게 데워서 드리면

 서너번으로 낳으신다.

온 방안은 관음죽 화분을 들여놓고

내가 특히 싫어하지만 촛불과 향불을 끊임없이 피워  노인 특유의 냄새를 진압시켜 왔다.

그러던 어느날 향불대신 귤껍질을 태우니 모든 잡 냄새가 거짓말 처럼 사라짐을 발견하고는

   촛불과 귤 껍질 만으로 암모니아 냄새를 잡게 되었다.

 

한여름 더위도 이길겸 이사 때문에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셨다가

이삿짐 정리가 늦어지고 할머니는 병원에서 운명 하셨다.

  크리스마스 이브 로 성탄절로 해서

결국 아주 보기 드믈게도  5일장을 치뤘다.

 그 긴긴 장례절차 동안에 눈물도 매말랐다.

   생각나는건 그저 통증약을 진작부터 해드렸다면 병원비도 약값도 고통도 받지않으셨을텐데 ....

이사온 집에서 하룻밤도 지내보지 못하시고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난 그저 잠만 내내 자댔고

우리 소피아는 5일 내내 700 명이 넘는 손님에 부뎄꼈단다.

 

.............    .............

병원에 문안 오신분 모도가 하셨던 말인즉

인자 그만 낳드려라 ,자꾸 뿌뜰면 서로가 고통이라는 말 뜻을 난 잘알지 못했다.

 

난 원래부터 잠이 많은지라

소피아가 집일로  잠시 교대 받는동안에도  

난 할머니를 주물러 드리다간 어느새 잠들고

 

난 그렇게 게을러서 병원엘 자주 가지도 않았다.

그저 통증약이나 닳여서 대기시켜 놓았다.

집 가까이로 병원을 옮길때도

우리 소피아 혼자 그모든 복잡한 일을 해냈다.

 

그러면서도 몇달 지난 어느날 부턴가

병원을 자주�지 않는 나를 보고는 할머니는 한마듸도 않으시고

그렇게 말문을 닫으셨고

그 지긋 지긋 끝없던 예기는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되었다.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심장박동기의 그래프엔 희미하고 가느다랗게 눈금이 이어질듯말듯

어머님 께선 눈을 먼 벽에다 고정하고 크게 부릅뜨고 응시하셨다.

난 겁이 덜컸났다.

아마도 무서운 꿈을 꾸셨나 보다 하곤

어머님 하고 여러번 불러 깨웠다.

눈을 내리며 모르는척 하시다가 스르르 눈을 감으며 주무신다.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데 너무나 차거워 내 손이 시려왔다.

 온몸에 푸른멍이 자꾸 늘어 났다.

 소피아와 교대받은지 10분도 안됐지만 그동안도 팔이 아파

쉬다가 주무르다가 병실밖으로 나가서 벤치에서 잠을 자다가

 

다리대신 팔을 주물러 드렸다.

 피곤하기도 하고 손도 시려

쉬어가며 잠도 들다가 주므르다가

 

깨어보면 또 눈을 크게 띠고 천장을 응시 하신다.

또 어머니 라고 크게 불러 또 주무시게 했다.

손으로 주무른곳에만 열기가 생기고 다른곳은 너무 차거웠다.

 

몇번이나 이런일이 반복�다.

 

혈압이 자꾸 떨어젓다가 올라갔다가 하신다.

무슨 숫자 인가 5 ~ 30 으로 머뭇거리다 한참만에야 잠간동안 80 까지 다다르기를 반복 �다.

간호사를 불러도 참 오래 그러 신다 할뿐 별 말없이 가버린다.

 

손이 너무 시려 내 머리가 다 띵 해저 왔다.

쉴겸 복도로 나와 앉았는데 그만 또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간호사를 따라 병실에 갔을때는 심박계가 널을 뛰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라고 할뿐 별다른 예긴 없었다.

심박꼐의 점들이 아주 불규칙 했다가 이어�다가 했다.

 

그새 또 잠이 들어 버렸다.

간호사가 깨우며, 지금 심박은 뛰곤 있지만 호흡은 거의 정지했으니

~ 하겠느냐고 물어왔다.

자세히 듣질 못해서,난 그냥 괜찮아요 했더니

그러시는게 좋을 거예요 하면서

 

산소마스크를 벗기고 무언가 목구멍으로 넣어서 분비물을 여러번 세척하곤 ...

난 그새 또 자부럿다가 눈을 떠보니 ,의사선생님 께서 운명하셨으니 가족에 연락 하란다.

 심박계는 계속 낮은수치에서 오르내린다. 스윗치가 내려�다.

난 이런 와중에도 또 자불고 있었다니 ,참 허망했다.

임종준비 하라는 말로 귀뜀이나 좀 해줄 것이지 .

그 중요한 순간을 눈깜짝할새에 마처 버리다니.

 

내가 환갑진갑을 지나고도 여러핸데

임종시에 옆에 있으면서도 임종순간을 놓치다니

난 끝까지 불효한 잠꾸러가 였다.

난 몸둘바를 몰랐지만 ,워낙 나이드신 분이라 ~ 가 불분명 하시단다.

 

전화를 하고 식구들이 모이는 동안에 머리가 대강 정리 됐다.

몸은 벌써 하루전에 부터 급격히 식어가는데

자꾸 주물러 드려서 체온을 유지하신게 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사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끈을 놓아 드려라는 말이

그런뜻이 었나 싶었다 ?

 

다른 사람들은 장례절차에 바쁜데 난 그런순간에도

이런것만 생각하고있는 머저리 였다.

 

집사람이 얼마나 많은짐을 떠맡아 일해냈는지

5 일장 내내 나는 잠속에 빠저 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몇년 지난 지금에사 잠못이루며 곰곰히 눈이 젖는다.

 

죄송하옵니다. 우리 소피아 여왕 폐하  !

 

 새벽 4시20분 ,이제 텃밭에 나가 우리 여왕님을 기쁘게 해드릴 참외밭에 물을 퍼주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