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최고 격전지 다부동 유학산 을 맨발로 둘러보고2005/3/27

2005. 4. 1. 12:14250. 이야기


2005/3/27

 

 

 

 

 

 

 

 

 

 

 

 

 

 

 

 

 

 

새벽 5시 20분산격동 에서 출발해서.버스편이 어떻게 되는지 자세한 자료를 찾지못해 무작정 떠났읍니다.아버님 생전에 자주 하신 말씀이 6.25때 보국대에 가서 다부동에서 지게에 주먹밥 질머지고 유학산에 전투중인 군인들에게 날라다 주는데 산이 무척험한데다 한번도 같은길을 간적이 없어 늘 인솔자를 따라다녀야 했고 내려올때는 제가끔 흩어저 줄행랑을 처 내려오곤 했는데 ,한번은 총알이 빗발처 엎드려 기다려도 끝나지 않아 그 아까운 주먹밥을 도랑에 묻어버리고 도망와버렸다는데 그날밤 군인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걱정되도 다음날은 또다른곳으로 밥을 날라다 주기 때문에 미안하단 말도 할수없고 사실 군인들 모습조차도 보기 힘들고 정해진 안전한곳에 내려주고는 와버리기 때문에 얼굴볼기회도 별로 없었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너무도 자주 들어 유학산이 뇌리에서 떠난적이 없었답니다.이처럼 제가 유학산을 찾는데는 남다른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에는 경북도청 앞에서 427번 버스가 있었는대 원대5거리 까지 가서 죽치고 기다려 물어보니 기사분 대답이 걸작이다. 동명까지 간다며 자기도 잘모른다는것이었다.다시 짜증나게 기다리는 동안 등산도 하기전 맥이 다 빠저 버렸다. 7시10분에 427번 버스가 또 도착했다. 다부동 가느냐고 물어 보니 그렇다고 해서 안도의숨을 쉬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차에 올랐다.그런데 이 버스가 고향땅 운암동을 거칠때는 좀둘러도 기분이 좋아 추억어린 고향산천을 창박으로 감상하며 지났는데 이윽고 동명에서 송림사로 간다 .아마도 거기를 둘러 올것으로 생각 했는데 계속 내닫더니 기성동을 지나 가산산성 넘어 남원 까지 가고 말았다.분통이 터젔지만 곧 다부동을 그려보며 기다렸다.옛날 국민학교시절 사라호 태풍피해지역 으로 소풍간곳이 여기 남원 인지라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보려는데 곧바로 회전하더니 손살같이 동명으로 돌아와선 내리란다.아까 다부동간다고 했잖아요 했더니 잘못 생각했다며 버스비를 환불 해주는것이었다. 다시 또 기다리고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가산산성 갈때는 요긴하게 쓰일것도 같아 그때는 헤메지 않게되어 다행이다싶기도 하다.

8시 45분이 되어도 427번버스가 오지 않자 비난을 퍼부으며 승객들이 250번 좌석버스로 우루루 몰려 탄다.같은방향 이라기에 또 무작정 탈수밖에 없었다.그런데 희한한 일은 분명 좌석버스 이고 효령을 지나 용성 오지마을 까지 간다면서도 입석요금을 받고 있었다.세상엔 정말로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것임을 직접 목격했다.다부원 에서 내려 등산안내판을 따라 유학산을 오르는데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

철탑 조금 지나 어쩌면 유학산을 닮은 듯한 작은 돌조각 하나를 발견해서 잘 닦아 보았다. 빗살처럼 많은 골짜기가 그려저 있는것이 멀리서 보곤했던 유학산과 너무도 닮아 있다.낙엽이 너무 부드러워 맨발로 걷기로 생각하고 양말까지 벗어 배낭에 넣고 매달아 674고지로 향했다.직전에서 다썩어 가는 탄피 하나를 주워 자세히 보았다. 철재로 되어 있어 북한군의 소총 탄피로 생각 했다. 발아래 폭신한 낙엽부스러기가 간지럽고 따스했다.또  탄피 하나를 주웠다. 역시 철로 만들어저 있어 녹이 심하다.짐승의 뼈조각인지 길에 나딍그는걸 한쪽으로 밀어놓고 계속 올랐다. 이번엔 놋쇠 탄피 하나를 주웠다.

아 ! 분명히 여기 유학산은 아직 까지도 그때의 전투지역을 증명하려는듯 아군의 탄피와 적군의 탄피를 남겨 놓았구나 ! 하고 생각 되었다.이제는 탄피와 파편에만 정신을 집중하며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고 길을 두리번 거렸다.

어떤것은 탄피가 탄창에 박힌채로 발견 되었다. 무기가 부셔지도록 마지막 까지 항전하다.물러간 적군의 흔적 인 것이다.어디 쯤 일까 이번엔 유해발굴장소 라는 팻말과 함께 구덩이가 여기 저기 허물어저 있었다.

불과 50여년전 민족끼리 싸우다 숨저간 숭고한 육신들의 보금 자리 였던곳.산천이 다섯번 이나 변해버린 지금 그들이 누구 였는지 아직도 지하에 남은 것은 없을지 ,이렇게 값비싼 희생을 치루고도 결말나지 않은체 휴전 상태로 두개의 나라가 되어버린 강토 ! 그리고 찾는이 드믄 이곳 유학산격전지  !

몇개의 탄피를 더 주웠다. 모두 철제품 이다. 그런만치 적군이 많이 있었고 최후의 공격을 해온것임이 증명 된다.그래서 아군 과 미군등 연합군이 부족해 수많은 경찰까지 동원되 방어를 해준 덕분에 대구가 풍전등화 에서 구출되고 구국이 된것이다.

 

유학산이여 ! 님 께서는 말없이 대구를 보필하며 산화된 2만7000  여 영혼을 감싸않아 주셨으니 깊이 머리숙여 감사합니다. 

 

 어떤등산객 일행에 부탁해 기념사진도 찍고 팔각정에서 건빵한봉지로 끼니를 떼운후 그제야 발이씨려 옴을 느꼈다.헬기장을 지나서 부터는 돌이 거칠어저 음료수로 발을 씻고는 신발신고 하산 하는동안 에도 약수터 한곳 없었다.팔재고개를 지나 다시 다부원 까지 완전히 도보로 360도 회전한것이다.

다부원 도착하니 3시 30분 이었다.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몸은 떨려 왔다.

나먼저 버스를기다리던 젊은 등산객이 견디다 못해 집으로 도움을 청해 달려온 승용차 편으로 칠곡장터 까지 오며 언몸을 후꾼히 녹였다.

723번 버스를 타고 내내 생각 했다.

아버님 제가 비로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유학산을 다녀 오는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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