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 가문 고려왕건에 함안 칠원산성서 성남땅 희안으로 유폐

2014. 8. 3. 04:3200.광주이상고향 칠원산성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의 고려귀속 후에도 우리 광주이 가문은 경남 함안 칠원의 칠원상성에서 고려왕건에 끝까지 항거하다 포로듸어 지금은 성남인 희안으로 영구유폐 당해 그곳 향리의 휘하에서 수백년을 종살이 해왔따.

그렁잉까 우리 광주이 가문의 족보는 챙길수도 엄능기고 희안 가서도 많은 인재를 떨가뿠따.

말 잘타고 활 잘 쏘고(夷 동이족: 이를 오랑케 이 라고 하는것은 아주 큰 잘못 이고 그 옛날엔 큰 활로 무장한 동이족 즉 우리 한민족 집단임) 점 잘 치는 주역에 달통해온 우리의 인제를 탐낸 휘안의 향리들이 신분을 속여주고 데릴사위로, 종의 자식을 그들의 자식으로 .봇쌈질 당코 등 성씨를 달리해버린 것였었떤 겄이 였었따. 그런 처지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솔잎 당수 점칠 주역은 자손 대대로 전해내려와 종 살이하는 주제에 글재주 비싱하고 성씨까지

갖추고 그 어러분 한문 주역풀이로 솔잎 당수점을 곧잘처 신망이 두터버 고려 중엽 이후로는 향리들이 더러는 청지기(마당쇠 보다는 높아 수결도 읽으며 손님안내하는 종)의 신분을 면해주어 공, 상, 점집으로 뻗어나다 조정이 문란해진 려말쯤에는 돈으로 중인 계급을 따 농사도 짓고 혹은 인재가 아까와 신분을 높여주어 과거도 들었따. 그런 연고로 희안이 광주로 바뀐 조선 건국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희안이씨 인물로 통해왔따. 우리 이 가문은 신라 라는 국호가 생기기 전 즉 국가가 아닌 호족(부족과 달리 혈연끼리)들 끼리모여 추장이니 족장이니 제사장  집정관...으로 말해지는 그런형태의 부족의 어른 + 나라의 큰 길흉변을 예언하는 직책으로 사리에 밝은 최고 어른의 지위를 가지고 계속되어오다, 이웃 백제 라는 나라가 강성해저 국경을 넓혀오자 서라벌에서 여러 호장의 의견을 모아 벌국 형태로 호장 회의 없이도 항상 벌판땅을 다스릴 인물을 선출해  첨으로 박씨를 추대시켜 거서간(통치자)으로 권력을 준 것을 시초로 박혁거세 즉 박씨를 통치자로 벌국땅을 지킬 아주 완전한 민주공화정치체계를 이룬 것이다.

그 후로도 이런 체계는 계속되어 박 가문, 석 가문, 김 가문, 등을 이 가문에서  선출해 왔기에 그때마다 통치 명칭은 새로 정하는데 주로 호족명칭에서 따오니 거서간 차차웅 마립간 이사금 으로 이름하다 내물이 아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모든 실권을 쥐고 통치자 명칭에서 호족이름을 쓰지않게 왕 이라 칭 하고 그때까지의 통치자 선출 전통을 없애고 처음으로 왕권정치를 실행 우리 이 가문(자선 호족)을 내사령으로 배속시켜 실권을 잃게하고는 급기야 경주에선 발 못붙이게 머나먼 함안의 칠원땅 으로 내쫓아 그곳에서 변방 소국(아라가야국의 잔당)의 침범을 방어케 칠원성주로 살아오게되압뿟떤 것이였었떤 것이였었따. 그래이 명예를 중시 여기고 권력에 탐하지않은 우리 선조님의 오랜 습속땅(세거지)인 칠원을 한번 방문키를 소원,

상당히 오래전 성남의 상대원동에 특허기술 개발건으로 3개월 예정항기 6개월로 또 추가 연장으로 개발완료 계획에 따라 초월면을 중심으로 성남을 들락거리며 광주이씨의 뿌리를 찾으려 했으나 모도가 하는 말인즉슨 중흥시조인 둔촌선생만 들먹일뿐 원 선조는 이자성 이라는 외에는 달리 얻은게 없어 당시 신라초기에는 신라라는 국호도 쓰지않았꼬 임금의 형태로 실권을 쥔 왕도 없었꼬 귀족 앙잉망 성씨는 물론 이름도 딱히 업서 ...똘아 ... 쇠야 ..... 운운 하다 급기야 얘기를 나누던 복덕방 할배에 호로자식이라며 후짖낐따.그때야 인터넷 해밨짜. 천리안을 전화선에 연결해 쓰는 정도라 별다른 서핑은 되지않았따.

백과사전에서 얻는 정보를 정리해서 뿌리를 찾으려도 직장에 억매이고 묵고 살아야 항잉 어령잉 수타망았는데

작년부터 안정된 직장 생겨 구체적인 자료를 서핑하고 올 봄부터 탐색계획 그저께사 5일간 여름휴가 에 자양구를 버스에 실꼬 현풍 지나 구지서 내려 칠원산성 행.

네비로 여행 하려면 경남 함안 칠원면 (유원리) 유장길 220 찍으면 정확히 현대근교산업 나오고 그 끝에서 대곡교 건너지 말고 오른쪽을 멀리 자세히 보면 칠원산성 표지판이 희미하게 낡은모습으로 보통눈에는 지나치고만다.

 

메모를 총 정리해 지도로 바까봉잉 다른이가 바도 납득해 줄꺼 끄치 보인다. 그러나 순정잉 보기숩께 그링기고 실은 거리가 억시기 멀다.

여기서 길을 물으면 100% 실페한다. 길을 잘못들었응잉 칠원면사무소 쪽으로 쭉 가망 커다탄 산성많고 여기는 없딴다.

  칠원산성 아는 이가 아주 별로 극히 없기 따뭉잉다.

 적어도 70 대 이상에 물어 보아야 혹 아는 이가 있을뿐. 왼 종일 오락가락 날씨는 뿍뿍 찌고 땀은 옷을 적셔 자양구 페달을 밟을수도 업서 힘은 점점 빠지는데 그쪽엔 식당마다 문이 닫혀 비상식량으로 뻐팅구고 칠원읍성 일수 있껬따 싶어(자료에 따라서는 칠원읍성=칠원산성 또는 주소가 유원리 58 또는 68 번지로 혼동되있따) 칠원초교를 및뿡이고 찾아도 경비아저씨는 한사코 모린단다. 수없시 길을 물어 지부 칠원읍성 표지판을 찾아냈꼬,교내를 막무가네로 밀고 들어가 뒷담에 있는 유물 들 사진을 참고자료로 찍고 요구하는대로 방문록도 작성해 주고, 주위를 쥐잡듯해매도 성은 안보이고 칠원초교 병설 유치원 담비락이 성을 축조 항그치 보이 판자 나부랭이는 다 걷어냈으나 밑자락의 자갈에는 지네랑 심발이 득실끄리 파낼수 없었따. 하도 오락가락 설치댕이 주민들이 보다몬해 면사무소 문화홍보에 물어 보란다. 바로 턱밑이라 가서 물응잉 한참만에야 위성 사진과 익히 보아온 인터넷 자료 인쇄해주며 담당자없어 자세히는 모린단다. 그걸 들고 부동산중계소에서 자세한 지도와 설명 듣고 늦은시각에 길을 찾아강잉 아까까지 죽어라 드나들덩 현대근교산업까지 가서 우영잉 칠원산성 표지판을 봉기다. 이제사 칠원읍성은 성곽조성연대가 조선시대인 15세기로 명백코 칠원산성 표시판과 칠원읍성 표시판 두가지 존재를 서로 다른곳에서 직접 보았씽잉 칠원읍성은 완전 제외 시킥꼬  해가 빠지는 중이라 철수해와 지넉 사묵꼬 여관을 찾아나성이 도무지 잠잘곳이 업땅 ...호텔은 물론이고 여관 사우나 찜질방 하다몬해 게임방 만화가게 청소년유스호스텔 민박 ....아는지식 총 동원해도 저 멀리 IC 지나 모텔 하나이 있따 카고 사우나 조차도 10시까지 영업잉잉 너무망잉 돌아댕기여 배고파 두번째 지넉까지 또 사묵꼬 갑자기 노숙자 되어 버스정류장마다 잠깐석 누벘따가 잠들기도 하믱 중심가로 오다가 옷이 쩍쩍 다리에 감키여 더는 걷기도 싫어 24시에서 아이스크림 한통샀으나 앉을자리 찾아 삥삥 돌다가 널ㄹ따란 침상 발견하고는 앉아서 정신업시 파묵다봉잉 금방 빈통 딌따. 둘러봉잉 대폿집 앞인데 열쇠는 장가있꼬 이발소도 그랬따. 둘다 간판도 엄는 집이다. 살핑잉 수도꼭지가 문 밖에 서있서 틀어 찬물로  세수하고 한릠 참말로 고맙심데이 ....비닐봉지에 물 받아 땅바닥에 흠씬 뿌리 열기도 식쿠고 발도 당구고 계피물로 온몸에 뿌리 모갱이 쫓고 잠깐 몸을 눕혀 아이스크림통 따깔이를 머리에 받칭잉 베게로 딱 알맞따.갑자기 너무더버 눈을 뜨잉잉 새벼2 시다. 잠들업뿠능기다. 승용차로 신문배달도 하고 있꼬 미화원이 쓰레기도 조가고 새빅 3시경 인자 정식으로다 집주인쪽으로 절을 하고 잠을 청해 푹 잤따. 아이스크림 따깔이 복팡이 머리에 눌리 오목히 꺼저 몸부림 첬겠찌만 머리가 고정되어 침상에서 몸이 널찌진 않아 큰 다행이엇따. 잠깨 칠원읍성 인근의 돌담사진 찍꼬 곧바로 칠원산성 표지판으로 자양구를 달맀따.도착해서 대곡교 다리밑 맑은물에 목욕하려는데 운이 나빴따. 벌시로 주민들이 니러오고 있어 길을 물응이 마침 지리에 밝아 자시이 설명들었따.여기서 산성으로 가는질은 꼬북꼬불 산길 항정업시 가야 됭잉잉 질도 업서지고 몬찬능잉 찻질 따라 자꼬 올라가망 공장이 일곱개 나오고 거어가망 돌케는 체석장 임도 시멘트 질따라 쭈 욱 올라가보이소 다.

                                            집나가망 고상잉데 나는 모갱잉 깨무능기 참을수 엄능기라서 기피사다 따린국물

기피 따린 국물 젱 먼저 챙긴다. 몸에 하믄석 뿌리농망 두시간은 전딍까. 바람 불어도 상관엄싱잉 F킬라 보다 강력

기피따린 국물은 밥반찬으로도 목마릴땐 음료수 로도 깜댕이 산모기 후첩뿌는데도 두루두루 만능 으로 써뭉잉까,

큰 댓빙에 두빙이나 챙기갔찌  닷새 여정잉잉까 망잉 있어야 맘 녹크덩 . 

 

                                                   애끼고 애끼던 사진용량과 밧테리 수명 더는 참을수 업서 전원키고  찰칵

쬐맹라도 퍼떡 갈라꼬 남지시내를 빼돌맀떵잉 이런경치는 보안는데 남이야 시엉켔찌만 나야 찜통에 빠진걸  ....!

어 ~ 엉 저 사람도 나름대로는 더버서 칠컥 빠저 버리네- ㅇ ,                            반대핀 경치도 일급품    

 

칠서면 이망 너무 서쪽 질로 왑뿐능끄튼데  ?   잠시후 자양구 통과할 갓길도 엄능 터널에서 하수도 띵낑 타고가다

아이~꼬 까딱햇씨망 죽얼뻔 깨진 띠낑잉, 기차 발통 여낭개 꿉어뭉능강 뀌쨰지능끅꼬 골쪼개지게 작렬하는 포성

아~ 니 ? 무신놈의 굴을 3개썩이나 연달아 끼낳능교 ?  여서 빠저나가뿔라꼬 눈딱꼬 찾아바도 니러가는질 없 땅 !

 

                          홍이 말짱 빠저 달랍뿐 귀를 비비고 안내판 따라 얼릉 칠원민사무소로 방향을 틀었따.

우째우째 가다봉잉 예전에 씨앗들고 와밨떤 칠원시장 골목 앙잉가 ?

 

때국밀 생각하믱 둘러바도 장날은 3,8 잉잉까 장꾼 있씰턱 엄꼬 함안이 아마도 저 산 이름잉강 ?

 

칠원읍성 질 찾따가 눈에 들어온 낡은 성벽, 유치원 담삐락 이다. 자양구를 거렁지에 바치고 팥빙설 한통 까묵고

칠원초교 경비 대뜸 몬드가게 무조껀 막아선다. 무조건 하고 칠원성 모린다꼬 딱 잡아 뗀다.전두황이 후손쯤일까 ?

 

자양구를 뺑뺑이 자꼬 돌자 주민들이 나서서 민사무소로 가서 물으망 된단다. 칠원엔 성이 망이 널리서 ........

 

디디어 민사무소에서 복사해 받은걸 근거로 학교 안에도 드가보고 밖에서도 표지판 찾았따. 

  성곽 축성연대가 망이 후기쩍 이라  제외대상으로 해얄 끄타. 나는 신라때 것을 찾응잉잉까. 

좌우지간 그림되로는 성곽이 전혀 없었따.

늙은 고목낭키 옛쩍 증거를 유지하고 인능 끄타.

 

정식으로 안내 받아 칠원초교 뒷뜰에서 만난 유물들, 칠원의 거북돌은 비늘 등껍질에 다리가 원시적 양각 임

소원 들어주는 할매돌 일까 ?

                      밍지 옷 다디밋돌

 

여러가지 주춧돌

 

 

 

 

 

 

칠원산성에도 이런류의 유물 발견할 꿈이 부푼다.

 

 

 

다부 나와 유치원 담삐락 말끔히 치우고 크게 확대해 찍음

                                             민 사무소의 복사본 들고 부동산 중개소에 들어가 번지따라 위치 와 가는질 물음

장암리로 가란다. 한 더부에 질깡앙 사람 기겅 몬항이 시행착오 여러번에 지부 비석 사거리 쯤 듸 보이는 비석 망이 서있능 데를 찾아냈따. 식당도 모두 이ㅣㅅㄴ날에 문 닫악꼬 배는 고프고 비지땀은 닭똥 끅코 참 애묵는데

은행나무찾아 가랑잉 이쪼는 성벽이 업땅잉, 잘몬왔땅잉 ,민사무소쪽 돌고개로 가랑잉,  참 탈도망코 헛수고 말란다.어쩔까 배는 고픈데 비석하나하나 들다봉잉 마카다 창원황씨 넨데

딱 하나 이씨 성이 딱 하나 븨긴한데 황씨네

유원리 마을 안쪽으로 드가자  무슨 말 일까 ?

고목 은행나무, 칠원산성이 있낀 인는 모양인데

 

너무 떠드는 개 고함에 물러나왔따가 아까 본 입구의 철공소 양반께 다시 물어 확언 받고 또 처드강잉 인자사 현대식 ? 마굿간에 말 한마리 보인다.개는 그야풀때기서 지키는 중이고. 어두버서 그렇치 완전 흰 말이다. 행운의 백마!

 

 드뎌 칠원산성 표지판 발견했따. 이질깡 밉뿡이나 왔따갔따 하다가 멀리서 지넉햇쌀에 희끄므레해서리

 

 

해나 잘안븨망 큰일이라 새로 메모지에 빼끼고 기념 촬영 했따. 지끔 이빨이 아파 내일 철수해얄똥 알수가 업서서

 

시내로 다부 돌아와 아픈 어금니를 달래믱서 몸도 식쿨믱 억찌로 천청잉 해물칼국시 꼽빼기로 묵꼬

잠짜릴 찾아 어슬렁 , 아무대고 내 몸 늴 잠짜리는 업섭뿌맀따.IC쪽 모텔은 너무 멀고 지나치는 버스 정류소 마다 잠깐썩 눕어 쉬다가 걷다가 자양구 타다가

                                                 내눈엔 함안 문양이 물끼기캉 물방악깐 수차끄치 븬다.

코꾸먼동 입인동 아이스 크림 막 퍼묵따가

맘에 꼭 드는 이집 살핑상에 꼬꾸라젔따. 자물시는 장가젔씽잉 주인은 엄능극코, 마침 수도꼭지가 보여 세수 하곤 여그서 노숙하기로 맘 묵꼬 비닐봉지에 물을 담아 뜨락전체에다 뿌려 열기를 식쿠고 내친짐에 또 비닐봉지에 물 담아 발도 당그곤 계피 딿리온 모기회피제를 온몸에 뿌리곤 아까 까문는 투게더 뚜껑을 베게삼아 누었따.

자양구를 바짝 시아 지나는 행인이 날 몬뽀게 만들고,신문배달 이랑 미화원이 스처 지나간다음 또 숙면하고

한릠깨 존 잠자리 주셔서 감사인사하고 눈을 뜨잉 바로앞에, 예수를 믿으라 .....교회LED광고가 번쩍인다.

 

너무 꼭두새벽이라 다시 어젯밤 돌던 돌담생각에 사진 찍으러 갔따. 이빨이 좀 덜 쑤시능 끄태 철수않코 기양 탐색

 

 

수십년인지 수백년인지

형형색색 늘어선

 

돌담 질깡

 

서장마실 입구에 산책나온 아기씨와 아침 인사, 이름이 돌담녀 인 그녀는 말이 없었따.

동녁이 붉그레  새벽질을 도서관 앞 장암리 가는 고갯질을 자양구 끌고 터벅터벅, 어제만 해도 쌩쌩 달린질

 

유장길 220 현대근교산업이 저만치 보인다. 그 바로 넘어 인는 칠원산성 쌓인 산

토깽이 한마리가 쓰다듬을때 꺼정 순하덩이만 시진 찍을라 캉잉 고망잉 저만치 내뺍뿐다.

 

개 딜꼬 산책하던 아가씨 칠원산성은 몰라도 여그 세멘질 말고 장암동 고개 돌믱 널븐 시멘트 포장길이 채석장 딱아논 돌 실어 나르던 질이라 칸다.

바로 여기서 헤여지고 나는 자양구 끌고 채석장 가는 넓은질 오르기 시작

 

 

 바로 앞에 븨능기 칠원산성 있는 목표다.

 

회록색바위가 딴딴해 븬다.

베랑강 목표지점으로 딱인 샛길 있었찌만 무시하고 계속 전진, 저 샛길에도 칠원산성 표지판 있었시망 졸 낀데 ?

계곡을 넘능거 봉잉 인자사 칠원산성 질잉가 본데 ?

인자 맘 푹 녹코 아짐 물라꼬 비상식량 축내는데

너무 탄딴해 물 부어 부리키게 할란다. 조 아래 또랑물에 목욕하고 나오망 몰캉해 지겠찌.

또랑물이 너무 차가바 물 한대야 정도로 목욕인지 샤원지 몸이 얼음짱 끄치 덜덜 떨린다

짱짱한 빛쌀에 금방 몸이 달아 우짜다 인능 거렁지 마다 쉰다. 내 자양구 나 따문에 고상 망이 한데이  !

 

아~니 ? 이게 머야  ? 와 자꼬 오른짤 파고 틀지 그쪽이 앙잉끄튼데, 채석장가는 딴질 인걸로 단정짓꼬

다부로 니러가여 아까본 샛질로 빠저 돌캉으로 드갔따. 이 더분데 애꾹쿠로 출입금지 폿말이 막아선다.

행이나 땅주인 집 븰까 두리두리 살피도, 꼬불랑질을 연신 돌아바도 집이란 업서 무시하고 산을 올랐따.

씨앗 장사때 모도가 탐내던 부지깽이 나물이다.

 

및꾸비처 올링잉 질이 끈나고 만다. 치어다 봉잉 꼭대기가 바로 눈앞이라 마침 긁꼬 질따란 짝때기 하나 조오서

 

오리긴 하는데 환삼덩쿨이랑 미느리밑식씻게랑 까시랭이가 내 반바지 아래를 몬살게 깔키싼다.

죽을용 씩씩대믱 짝때기로 후리치고 재끼가믱 긍긍잉 큰 나무 망이 서인는 거렁지 짜로 드강이 거서 부터는

거렁지는 존데 허리를 감는 망개둥잉캉 칡덩쿨캉 살을 베는 속새가 또 몬살게 군다.

 

능선에 접해봉잉 인적끈친지 오랜듯 도무지 질이 없따. 산때지 자국 따르장잉 늘상 허리를 굽히야 하고

 짝때기로 나무 둥치나 바위를 연신 탁탁 치믱 짐승들이 물러나라는 신호 를 내믱 기다싶이 기어 올랐따.

철조망이 보인다.   자테 가봉잉 깍아세운 절벽밑으로 공장들이 한정업시 많다. 반대핀은 평탄지라 유심히 살핀다.

아무리 꾸썩꾸썩 사베바도 성곽은 안쁸다. 한시간 가량 끝끄정 가바도 성곽 끄틍 기미도 안쁴고 원경뿡잉다.

이제 막 저임때라, 넓은 평탄지에 혹 주춧돌이라도 ....... 대신 소똥 뭉틔기 끄튼 버섯만 항그 널맀따.

굴 모양이 짐승들의 소행이다.  사람으로는 콕꾸멍 끄치 생기문 구댕이는 팔수 엄씽잉까.

구댕이는 수타 망이 널맀따

 

안내판에 씌인 성곽도 유물도 항개도 안쁸다.

 

 

약간의 돌담인듯한 곳을 한곳 만내킸따. 아주 쬐끔 1 m 쯤  일까 . 흙과 돌을 번갈아 쌓은 돌담형 초유의 퇴뫼성 ?

퇴뫼성은 바깥쪽은 돌로 쌓아 올리고 안쪽은 흙을 보충해서 돌이 귀한곳에서 쌓는 처방인데 돌담형은 업찌 아마 ?

 450m 길이는 고사하고 1km 쯤 해맹끄테서 포기하고 내일은 저쪽산을 더텀을량 한참을 철수하는데데 

홧 - ?  너덜일까 뭉개진 성곽일까 ? 떼가 찐 이끼 층거리로 햇수를 짐작해 볼라는데

 

 여기를 평생 잊찌 몬할 끄타. 아주 오래오래 묵힌 참나무 3가쟁잉 ,물론 더큰것도 더러 있었찌만

보통 ANEJADML 너댓배 크기 앙잉가 ?  DNA QNSTJRGKF QKFRNFGJRKF  ?  신중해얄 끄타.

창원황씨네 개장지는 많았시나  훨씬 큰 이건 왜 낭가젔실까 ?  난 꼭 조상님의 냄시가 묻혔실 가능성을 점치믱

      만약에 이곳이 칠원산성 성곽지 라카망 틀림업시 내 추측이 들어 마질 낀데 ....?

             왕건에 포위당해 장렬사한 높은신 분의 장지 라꼬     ! ! !

 

햐---   이건 인공적인 가공 흔적 ?

베랑강 짝때기 끝에 틩 소리 , 금속성 소리 , 누구에 들킬까 살금살금 풀썩엉킹거 히지낑잉 스텐파이프와 철판이 나타났따.  젖묵떤 씸 까지 애써도 꿈쩍도 앙한다. 틀림업시 보나 마나 칠원산성 표지판 일꺼라, 기필코 파내야지 !

파이프 기둥과 판자사이로 자란 참나무 등걸을 돌뭉치로 짓이기기 씨름 한시간 여 만에 일받아 시앗따.

분믱이 칠원산성 표지판이다.  그렇탐 아까 그곳도 틀림엄는 마지막 자선 수장님 ,

                                            소위 자성님의 자성님의 ...자성님으로 계승되온 .......마지막 수장님 잠드신곳 ?

 

               아~ 아 - 인자 살았따. 고목 둥치를 끌어다 표지판과 함께 잘보이는 길목에 내다 잉기 시았따.

                          칠원산성은 분믱이 여긴 만치 내일 반대핀 산속을 헤맬 필요는 엄능기다.

                                           우리 광주이 가문의 신라말 고려에 마지막 항거지 칠원산성 !

             3십년 꿈꺼온 내 필생의 소원 하날 또 성취했따.

                    한릠께 감사 부처님께 감사 옥황상제님 용왕님 감사 우리 광이 조상님께도 감사 !

                                                  하기휴가를 보람되이 주신 A.F.W 께도 감사 !

                                          우리집 여왕님의 나 홀로 상고향 방문계획 용인도 감사 !

 

5일간의 휴가기간을 단 2틀만에 달성하고 다른이를 위해 표지판이 저 멀리서도 잘 보이게 짝때기로 숲을 꺼꾸리고

                        정 중심에 작은 4각 반짝반짝 빛나능기 칠원산성 표지판

 

 날 지켜주던 짝때기와도 석별의 정 나누고, 비로서 주변경관 감상하믱 토종 바나나인 얼음 열매도 기겅하고

남지 꺼정 왔을때 부터 그름끼 쬐맨찬상 거렁지 찌운다.  그긴 따사나 거렁지찌능거는 방갑꼬

                            남지 질로 택항거는 자양구 갓질 엄는 연속 3개 뀌논 터널이 싫어서리 !

                          

                 갈멜수도원도 고귀롭꼬

 

남지철교는 이름관 달리 기찻질 앙잉 철로지은 자동차용 다리

 

바로 자테는 자전거 전용 새파란 철재다리 ?

 

남지읍 사무소, 여기서 부터 남지 시장인데 장날은 2.7 인지라 한산, 지난날 씨앗 팔러 댕길때 그 화가님들 씨앗 ?

 

여러집 들러 결국은 찰쌉보리 안찡거는 구해 갈았는데, 내야 본시부터 껍띠기 꺼정 갈아 멍능 고집 이그덩 . 

암만 사베바도 때국밀(귀리)는 몬찾꼬

대구끄정 자양구에 실꼬 간다는 말에 놀란 주인을 뒤로하고

                             엔진 구동  행글라이더 감상하며 저런 꿈은 내겐 아예 업섰찌베  ?

 

저럭키 높이 떠본들  지금 내 기분만큼이나 들떨까   ?

 

현풍까지 목숨아 날살려라 !  자양구 막 발밨따. 시강잉 여삼추라 지녁 9시 10뿐 넘어망 600버스 막차 떨가뿌거덩.

 

집에서 모갱잉퇴치할라꼬 끓인 계피 국물 아직도 작은빙에 한빙은 낭가왔따. 야풀때기 스프레이병에 담아서 분무.

                           

       칠원행선지 서핑으로 기링거 약도 치곤 참한데

 

칠원산성  기링거, 이걸 꼭 믿응기 산에서 갈팡질팡 민항 큰 공훙이다.

   

  유장길220 에서 칠원산성표지가 너무 낡아 사진판독 몬할끼라꼬 빼끼 적응거

바삐 깔기낳서 난도 몬일껬넹 .

 

 

이틀 탐방하고, 이틀 몸쌀중 악심묵꼬 글 올링다.

인제는 기억이 가물대샇서 더늦추망 몽땅 까뭅끼 따문에 .

 

                 이세상 모든이와 만물에 감사 !

 

 

 ps.어령터란 지명이 곧 자령님의 암시 고려말의 쇄망때 벼슬 놓고 아무도 몰래 운둔해버리신 분 일 께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