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가본 인동장이 이렇게 멀리 떨어저 있을 줄이야 ! -----( 8 )

2006. 5. 23. 08:2326v.인동장

2006-05-22 오늘이 끝 숫자 2 , 7 로 끝나는 인동 장날 이다.

 

복현5거리--->유통단지입구--->동서변동--->국우터널--->동명장터--->봉암동--->학명동--->가산재--->다부원--->천평--->학상동--->세월지--->인동우채국--->인동시장 도착

--->이계천 변의 석적로--->유학로--->성곡리(600년 느티나무 노거수)--->중리(백고개)--->백고개지--->유학산 재(정확한 명침은 모름 : 도봉사 입구)--->학산1리--->학산 2리(원정)--->다부동 IC--->다부동 전적 기념관--->다부3거리 우회(가산 재)--->대광석물--->가천리 삼산동--->직금동(금암4동)--->동명--->봉암동--->나박딍 모릥에서 호국로 로 좌회전 --->한국외국어대학--->보병50사단--->국우터널--->서변동--->유통단지입구좌회전--->복현5 거리  귀가

 

5:30 에 출발했다. 자전거 타이어가 너무 단단해서 진동을 줄이려고 공기를 조금씩 뽑았더니 완충은 대단히 좋았는데 오르막을 오르기 힘들었다. 타이어가 도로바닥에 착 달라붙어 몹씨 힘들다.

국우터널을 첨부터 자전거를 내려 걸어가야 할만큼 힘들었다.

외삼촌 께서 너무 먼길이라 죽을 고생하며 다니신 길 이라기에 시계까지 가지고 가며 메모를 해 본다. 다시 가볼 기회는 힘들것 같아서 하나하나 눈에 띄는데로 적었다.

 

5:30 복현 5 거리 출발 국우터널길을 걸어서 통과하려니 시간이 많이 지체됨

7:00 나박딍미 모링이 통과

7:15 동명에서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더넣으려 했으나 문열지않아 있는힘껏 가산재로 밀어부침

8:30 가산재 통과  바로밑에 다부원 이다. 혹시나 달래주아라도 있을지 하고 보다가 휴대폰 하나가 열려진체 떨어저 있는것을 주어보니 날짜가 선명했다.

8:50 천평3 거리 좌회전 통과 고가교 3개 밑 지하도 지나 킹모텔3거리 우측길로 송학리 행 으로

9:00 송학 4거리 좌행 여기서 천생산성 오르는 길 있음 ,구미시에서 동쪽 대로를 보고달릴때 대로 중앙에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산 위가 평평한 유명한 산이 천생산 이다. 906번 도로를 따라감. 구미 16 km 이정표

 

학상리 (토실 마을)  학 자 븥은 지명 그대로 크고 흰 학이 하늘높이 많이 날고있고 모심기가 한창 이다. 시간을 적은 메모지를 잃어버렸다.

모내기 하던 아낙이 잠시 쉴참에 자루에다 토종뽕잎(토종읕 뽕잎이 잘고 많은 갈래가 생겨있다) 을 많이 따 모으고 있었다. 먹는거냐고 물어보니 먹어도 되지만 토종뽕잎을 쩌서 반드시 그늘에 말려서 보릿찻물 닳일때 같이넣어 닳여 자주마시면 혈압을 내리는데 아주 좋은데 풋내가 많이 나지만 약으로 먹는거니까 참고 마신단다.

 

학하3리(지그마 마을) 으례 그렇듯이 상 ,중 ,하  가 차럐로 지명에 자주 등장한다.달래주아 10 알

 

 

학하1리((소복이 마을) 밭둑에 익모초가 많이있어 꺽어 담았다.

 

 

학하2리(돌짝골 마을)  달래주아 5 알  거둠  가구점앞 전주밑에 잎이 아주 잘게 핀 순 토종뽕나무에서 빨간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다.지금이 오디주 담글 적기이지만 완숙때 다시와서 씨를 거두어야 겠다.지금쯤 하판 이어야 하는데 안내판이 없었다.

 

학하2리(고냄이 마을) 역시 학이 유성처럼 날기도 하고 논둑에서 큰키를 자랑하기도 한다.

 

10:20 사각지 통과 모내기 중에도 낛시꾼은 있었다.

 

신동(새마 마을) 도로변에 토종뽕나무가 줄지어 있고 간혹 붉은오디를 달고있다.가로수로 보호해줄지 걱정이다.

 

구평(세월지 )도로변 전주 주위에 대단히 큰 너삼이 6 줄기 기운차게 뻗어있다. 귀한 약제인데 저뿌리를 잘게 찢어 소주에 담궈 한달뒤부터 마시면 배가 더부룩하게 헛배 부르거나 팔 다리 어께 허리 아픈데 잘 낫는다고 소문 나 있는 약제다.이길은 아직도 산골 토질이 유지된 시골길 이다.

 

우체국 과  육교 2 개 지나면 인동4거리다. 여기서 우회전해들어가면 잠시후 목적한 인동시장이다.

 

11:20 인동시장 도착 했다.

큰일났다. 8시 30분 부터는 줄곳 내리막을 힘차게 달려왔으니 올라갈때는 최소한 3 배이상의 시간이 필요할태니 10시간 이상 걸릴것이다.급히 시장을 둘러보고 곧장 되돌아 가야 한다.

직진형태의 4 거리 왼쪽전체가 시장 이다. 큰 시장골목이 2개 이나 바로 구미시와 접경지라 그런지 고기가 풍성하게 진렬되고 사람들이 혼잡했다.

토종씨앗은 한사람만 자루 몇개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5사람은 오직 종묘상의 씨앗뿐이다.

나이든 농사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그래도 시장 규모는 칠곡시장 5 배는 넘을것 같다.

판잣집 한켠에 상치 고추 밭에 난데없는 아주 귀한 홑꽃잎 작약이 피어있다.서울국화  도 귀해진 꽃이다. 이런것을 고이 고이 기르시는 분은 나이든 시골분 일 것이다.

모종파는곳도 거의 없다. 완전히 구미시의 영향을 받아 농사지을곳이 없는것 같다.

 

인동장 까지 오전내내 달려온 내리막 길이니 일찍 서둘러 귀가해야 겠다는 마음에 잠시 궁리했다. 석적을 거처 왜관으로 나가 지천으로 빠질려니 길을 너무 멀리 둘러야 겠고 되돌아가는 길은

걸어서간다면 10 시간이상 오르막길을 걸어야 할것같고 그래도 왜관으로 빠지는게 평지로 고생은 덜할거란 생각에 이계천도로를 따라 석적 을 지나 왜관 쪽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11:40 인동 4 거리를 출발 이계천변 도로를 따라 가다가 끝에서삼성코닝 4거리 좌회전하며 이계천을 건너자 오른편에는 LS 전선에 이어 LG LCD 를 지나 는 석적로 길 중간에서 유학로를 만났다.

유학이란 이름에 눈이 펏뜩해서 혹시나 유학산 가는 길일까 하여 상점에 물으니 그렇단다.

대구가는 길이라면 왜관으로 그렇게 먼길을 돌아가는것 보다야 두어시간만 고생하면 유학산을 빙 돌아서 가산까지는 내리막 이라 쉽다기에 또 마음을 고처먹었다.

12:15 석적로 중간 3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유학로를 따라 자전거를 밟았다. 궁중븨폐 고개를 넘고

 

성곡리에서 경상북도지정 보호수인 대단히 큰 느티나무 600 년된 거목을 보았다.이때것 본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보였다 두 나무 인데 한나무는 땅바닥에서 바로 2 가지로 뻗어났다.

길을 물으니 이길을 죽 가다보면 비포장 길이 되는데 재만딍이까지 약 4 km 가 험한 길이란다.

한시간만 고생하면 그담부터는 잘 포장된 내리막길이 가산까지 연결 된다기에 힘을 얻었다.

이길로는 자동차가 거의 달리지않아 오르막에는 지그재그 로 자전거를 몰았다.

 

13:00 성곡지 에는 물이 몹씨맑고 물속에 잡풀이 전혀 없어보이는 특이한 못이다 낚시꾼도 안보였다.규모도 상당히 크다.

 

13:20 중리(백고개)분명히 내리막 길로 보이는데 죽어라고 자전거가 나아가지 않는다.있는힘껏 자전거를 밟아 시멘트 옹벽끝까지 와서 뒤돌아니 아차  ! 한껏 오르막을 올라왔던 것이다.

완전히 내리막길로 속았던 것이다.귀신에 홀린 기분이다.발을 떼보자 자전거는 금새 후퇴하는 오르막길이 이처럼 내리막길로 보이다니 !

백고개 정상에서부터 비포장 도로였던것 같다.

 

13:40 백고개지 이다. 들은 보이지 않는데 못은 왜이라 자주 있을까 ? 불과 한시간도 못되어 발바닥이 불덩이 같이 뜨거운데 마침 저수지 중간으로 흘러드는 개울이 있어 양말까지벗고 개울을 자갈로 막아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발을 담그고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을 먹었다. 아이스팩위에 둔 김밥이 얼어서 자갈씹듯 밥알이 탱글탱글하다.오이 소베기의 물기로 밥을 먹을수있기는 했다.작은물병 2개는 동이났고 한병만 남기고 아꼈다. 두병에는 개울물을 그득체워 할머니 드려야 겠다. 이정도 차겁고 맑은 물이라면 약수인 것이다. 발이씨려 3분정도 담그기도 힘든다.몇차례나 발을 담그어 충분히 식힌후 신발신고 두시간 가량 고갯길을 다 오르도록 발이 뜨겁지 않았다.참 희한한 찬물 이다.

 

14:10 점심을 끝내고 길을 재촉했다.고갯길엔 엉겅키 너삼 제피  등 귀한약초와 함께 폐가전제품도 다수 딩굴고 있다.

비포장 도로인지라 바람이 불면 모래먼지가 얼굴을 세차게 훑고 지나간다.

 

꼬부랑길을 들어설무렵 비가 솓아저 우의를 펼처 입는동안 경사지에 누군가 칡을 케다가  보잘것 없어서 인지 중단해 놓은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경사지라서 케기도 쉽거니와 한줌굵기의 뿌리가 잘려진체 여서 횡재라 생각하고 잡아당기기 시작 했다.

검게 퇴색해있는것으로 보아 한달전쯤 아직 움도 트기전에 였던것같다.

바보같이 검고 가늘고 긴 숫 칡이 약이되는줄 몰랐던 것이다.

칡닭 고아먹기 딱 좋은 칡인 것이다.

얼시구나 하고 톱니칼 한자루 만으로 괭이도 없이 케기 시작했다.

켄다기 보다는 흙을 걷어내며 얽힌 잡뿌리만 끊어내며 잡아당기기만 하면 줄줄이 뽑아진다.

작업을 끝내고 도랑물에 씻어보니 약 4 m 조금 넘고 잔가지끝에는 몽툭한 봉양도 몇개 달렸다 .

오늘 느티나무 거대 노목을 보아서 그런지 칡뿌리 또한 내 생애 최고의 크기를 뽑은것이다.

(다음날 다듬어서 짧게 잘라 정리했어도 3 kg이나 되었다)

칡을 다 케내고 물에 싰는데 30분 소요됐다. 바위산 에서 같으면 한나절은 걸려야 할것이 경사지대의 땅표면으로만 자란지라 너무쉽게 작업 끝났다.

 

 비도 그처 선선해저서 고갯길을 재촉했다. 주운 휴대폰이 어찌 됐을까 싶어 열어보니 비통화지역....부재시 전화 한통... 이라고 찍혀 있었다. 여기서는 전파도 닿지않는 산속인 모양이다.

비포장 고갯길만 4 km 를 오르는 길에 종종 샛바람이 일어 얼굴에 흙가루가 세차게 날렸다.

15:10 공사장바로옆에 승용차 한대가 전소돼 있었다. 문이 열려잇는것으로 보아 사람은 탈출한것 같다.

유리창이 모두 녹아 있는거와 경합금이 녹아있는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불덩어리 였는지 타이어가 그렇게 쉽게 타지않는데도 철사만 남아있었다.더구나 땅바닥과 휠사이에도 고무조각 하나 남김없이 모두다 타버릴수 있었다면 좀 이상한데 뜨거운 흙이 촉매제가 아니라면 상상을 할수없는 일디다.폐타이어 보일러에 불을때본사람은 알수있는 일이지만 타이어조각은 잠시도 기름이 공급되지않으면 금방불이 꺼저버린다.불안전하게 타게되면 검은흙같은 무거운 재가 철사에 엉겨 붙게 마련인데 이처럼 재도없이 앙상한 철사만 남기고 타버릴수는 거의 없는일이다. 누가 곁에서서 바퀴4군데에다 장시간계속 기름을뿌려주었을까? 하여간 이상한일이다.뜨거운 흙이 촉매였을까?

 

15:20 고개정점을 올라 휘감아 내리는 곳에 부활동산이란곳에서 위를 처더보니 비안개속에 모습을 드러낸 유학산 바위덩어리 가 곧 굴러내릴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깜짝놀라 자전거를 올라타고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곧이어 밀알공동체 아래 3 거리에서 좌회전해서야 쿵닥 거리던 가슴이 진정됐다.

바위굴러떨어지는 산사태가 나지는 않는모양이다.

아까부터 오르막길을 내리막으로 헛보았고 이번엔 또 바위가 덮칠것같은 광경도 보았고  아마도 배고픈시점을 너무 지나처서 늦게 점심을 먹어 아직도 원기가 되살아나지않아 헛것을 보았던 게야 ! 다음에 점심을 많이 싸가지고 이쪽으로 다시 하이킹 이라도 해서 내가 헛것을 보았는지 자연상태가 그러했는지 다시한번 확인해 보고픈 곳이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금새 학산1리였고 옛날에 근무한 SUS 배관부속공장도 눈깜짝할새에 통과했고 올해도 그옆엔 밭벼가 뿌려젔으리란 생각 하는 사이에도 계속달려 학산2리 (원정)의 참나무숲 담쟁이 무성한곳에 와서야 자전거를 내려 진땀을 씻었다.

염라대왕에 불려갈 나이건만 바위에 치여죽기는 이토록 무서웠나 보다.

 

그러면 그렇지 바위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려면 6.25때 포성에 이미 무너젔겠지 지금까지 참앗다가 하필 내가 지나칠때 무너질 일이야 있었을라구 .

 

꼭 팔공산의 용솟대 바위 같은 자세 였던 것이다.

 

다부원 IC에 오자 안내판에 요술고개 10.5 km 전방 이라고 분명히 써 있었다. 아니 그렇담 헛것을 본게 아니란 말인가 ?

 

아직 도로공사중이고 포장도 안된길인데 이리 성급히 안내판까지 했을리야 있나 ? 어디 또다른 곳이겠지.

4:13 그런데 다부동 전적기념관을지나 다부리(다부원) 3거리 우회전을 마치고 가산고개 정점까지 몇차례인가 그런 이상한 도로는 여러차례 있었다.

 

6.25때 2만5천의 전쟁넋이 바람빠진 바퀴를 자꾸만 끌어당겨서 내리막길을 잘내려가지 못했을까 아니면 실제로 오르막길인데 내리막으로 보였을까 ?

분명한건 배도 몹씨고파 기진맥진 해 있었고 자전거 바퀴의 바람은 지나치게 빠저 있었고 분명히 내리막길을 힘겹게 밟다가 뒤돌아보는순간 뒷쪽이 완전한 내리막길이고 내가 잇는곡이 정점 인것처럼 보여도 끝까지가서 보면 뒷쪽은 계속된 내리막길이라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한두번도 아니고 두려운 도로다.유학산을 휘감는 도로 전체가 그랬던것 같다.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빈 도로여서 공연한것에 다 신경이 쓰였다.

 

자전거에가 수준계를 장착하고 바람도 잔뜩 넣고 다리에 힘이 꽉생겼을때 다시한번 꼭 둘러보리라 맘먹었다. 내성미에 그냥 넘길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다.

 

(5/26 실제로 수준계 알맹이를 하나 구했는데 자전거의 쿠션이 심해 앉을때마다 기포 위치가 달라저 부착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보기쉬우려면 핸들중앙에 달아야 하는데 ,좀더 둔한수준계를 구해야 겠다.)

 

4:20 가산고개에서 동명쪽으로 잠시 내리막을 달리다 순간적이지만 굉장한 돌덩어리 조각작품이라 여겨저 자전거를 돌려 세우고 감상 했다. 돌덩어리 자체가 길쭉한 원반처럼 생겼고 표면은 마치 수천년 땅속에서 녹쓴 쇠붙이 인양 뚜꺼운 붉은녹 껍떼기를 손바닥만큼씩 다닥다닥 붙이며 떨어지기도 하면서 움푹 파들어간 내부의 엷은연두빛회색의 희한한 색조에 걸작으로 양각기법으로 조각해 있었다.

 " 대광 석물 " 라고 감히 밝혀 놓을만큼 대단한 조각솜씨다.

물어보니 오석 이라하는 돌이란다. 아주 결좋은 청석 같았다.크기는 어른큰키 정도이고 많이 만들어저 있었다. 여기다가 주운휴대폰을 맏겼다. 금방 통화가 됀 모양인지 찾아가라고 하는 모양이다.저정도의 작품들이 건축물에 장식해 있어야 할게 아닌가. 왜 모두들 새건물 잘지어놓고 부속예술품은 그저 밋밋하고 싸구려 끼워맞춤식 조각물 들만 내세워 놓았을까 ?

여기와서 한번만 본다면 당장철거하고픈 맘이 생길것인데 이건 내 마음일까 ?

 

여기에도 몇장 소개 해놓아야 할 일이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작품 대신 집에가저와서 사진 찍을수있는 오석이란 돌껍질 조각을 얻어와서 사진을 올린다.

 

쇳조각의 녹쓴듯한 색갈과 그런형상의 박리된 오석의 껍질 이다.

 

 

박리된 껍질의 안쪽면은 조각된면과 같은색상이다.저런색상에 광을 낸곳과 무광인곳의 색대비로 과히 환상적인 색조를 띈다. 이런석질로 조각을 했으면 철분산화 박리 변질을 막기위해 내수성 코팅 을 해놓아야 오랜시간 변질을 막을수 있으리라 생각 된다.

 

 

5:07 가천리 삼산동을 지나고 직금동(금암4리)도 지났다. 정구지(부추)밭이 무진장 많았다 .

 

5:17 동명 과 봉암동을 지났다.옛날엔 동명 송림사 절에 3000 승려가 살던시절 칠곡 팔거들의 1/3  이 절 소유경작지였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시냇물에 쌀뜨물이 뽀얗게 흘려내렸다고 보암리란 지명 이란다.

 

5:30 국우터널로 통하는 호국로 갈림길이다. 한국외국어대학 50사단을 지나

 

6:00 국우터널 까지 힘겹게 오르막길을 걸었다. 이제 부터는 내리막 길이라 살것 같았다.

 

6:13 서변동 까지는 속시원히 내리막길을 달렸다.

다시 침산대교부터 유통단지 이후로도 오르막엔 걸었다.

 

6:45 복현5 거리 도착 몹씨 힘든 일정을 마첬다 .

집에오니 집사람이 8시반 전까지 꼭 돌아오도록 기도 했단다.미리 전화를 해두었더니 걱정했던 모양이다. 기도의 힘이있어 순간적으로 유학산 지름길을 생각나게 했던 모양이다.그렇지 않고 왜관으로 둘렀다면 밤중에 라야 도착했을 것이다.

 

배고프면 무조건 먹거리를 먹어야 할것이다. 그런데 유학산을 빙 두르는 길 어디에고 구멍가게는 고사하고 인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비상식량도 챙기지 않아 더욱 힘들었다.

 

오늘은 별나고 희한한 일이 많았던 날이다.